■모택동 비록(상·하)
산케이신문 특별취재반 지음
문학사상사
비록 순간이지만, 문화대혁명을 희망의 칼날로 여긴 적이 있었다.
68혁명을 이끈 프랑스의 지성들은 북경행 비행기에 올랐고 핑퐁외교와
함께 모택동 어록이 하버드를 비롯하여 북중미의 대학가를 휩쓸었다.
문화와 교육을 통한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는 자본주의적 인간소외의
대안으로 비쳤다.
그 후로 오랫동안 문화대혁명은 분서갱유와 맞먹는 잔혹한 상처였다.
천하대란의 시절을 직접 체험한 홍위병 세대가 문화예술의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문화대혁명은 광기와 부도덕 그 자체로 전락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진개가와 장예모의 영화들, 「사람아 아, 사람아!」같은 소설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자의 고통을 살갗을 벗겨내듯 생생하게
형상화했다.「낙타 상자」로 널리 알려진 세계적인 작가 노사가 손자뻘인
홍위병들에게 학대당한 후 "나는 우리들의 나라를 사랑했다. 그러나
누가 나를 사랑해주었던가?"라고 슬퍼하며 강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그 시절의 참담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모택동은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평생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장개석과 일본인들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운 일이고, 또 하나는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일이다."
산케이신문 특별취재반의 「모택동비록」은 문화대혁명을 가해자의
입장에서 다룬다. 내면의 찐득찐득한 상처보다 발빠른 다큐멘터리적
구성이 돋보이는 것은 1999년을 전후로 쏟아진 문화대혁명기의 전기와
회고록에 힘입은 바 크다. 이를 통해 풍문으로만 떠돌던 몇몇 장면들을
모자이크처럼 짜맞추는 것이 가능해졌다. 모택동이 22년 만에 두 번째
부인 하자진과 여산에서 재회하여 회포를 푸는 장면이나 세 번째 부인
강청이 실크잠옷 차림으로 수입비디오를 보다가 체포되는 장면은 잘
다듬어진 단편소설 같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모택동이 있다. 모택동과 임표, 모택동과
주은래, 모택동과 등소평, 모택동과 4인방, 이런 식으로 파트너를 달리
하며 시소를 타는 형국이다. 파트너가 바뀔 때마다 모택동의 새로운 면이
부각되며, 그것들이 쌓여 모택동의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모택동이 "각 지방은 많은 손오공을 올려 보내서 천궁을 소란스럽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했다거나 천안문
광장에서 홍위병 송빈빈의 이름을 송요무로 바꾸게 한 일화는
간접적이면서도 확실한 대중 장악력을 드러내고, 2년이 흐른 뒤 홍위병의
5대 영수를 불러 놓고 "투쟁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개혁하지 않는다"고
질책하며 하방을 명령하는 대목에서는 맺고 끊음이 분명한 냉철함을
보여준다. 또한 등소평을 "솜 속에 바늘이 있다. 겉은 온화하지만 속은
강철같다"고 평가한 대목에서는 탁월한 지인지감을 살필 수도 있다.
모택동의 절대 권위는 임표의 쿠데타 계획서로 알려진 노트 속에 적힌
"현대의 진시황제를 타도하라"는 구호 속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나며
측천무후가 되고 싶어한 강청을 통해 희화화되기도 한다.
눈에 선한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모택동의 죽음과 「역사적
문제에 관한 당의 결의」라는 문건을 접하게 된다. 1981년 채택된 이
결의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한 모택동의 과오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고,
공산당의 지도자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무오류성의 신화도
깨어졌다.
발빠른 취재와 치밀한 고증은 돋보이지만 첫장을 펼칠 때부터 품었던
의문은 여전하다. 희망과 상처와 침묵의 세월이 흐른 지금 왜 또다시
모택동을 살펴야 한단 말인가. 홍위병과 문혁 4인방이 전면에 나섰지만
모택동이 결국 모든 걸 배후조종하였다는 '음모론'을 문화대혁명의
실체로 확정하기 위함인가.
모택동의 고뇌와 철학이 덧붙여졌다면 이 책은 더욱 빛났으리라.
닉슨에게 당당했던 모택동처럼, 지금 중국은 팍스-아메리카나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백년이
넘도록 혈맹을 자처해온 북한은 모든 방면에서 중국과 보조를 맞춘다.
북한의 미래를 살피기 위해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이 걸어온 길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모택동이 의미 있는 자리는 그의 더운
심장을 통해 중국현대사의 영광과 좌절을 만질 때뿐이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굶어 죽어가고 있는 2000만 명의 인민을 살리기 위해, 스탈린
사후 흔들리기 시작한 사회주의권을 하나로 묶기 위해, 미국과 맞서기
위해, 모택동이 지새운 밤들, 읽었던 책들, 만났던 사람들은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산케이신문의 기자들은 왜 이것들을 찾지 않았을까.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영웅이면서 27년이나 권좌를 지켰던 거인
모택동을 정치적 음모와 술수로만 살피는 것은 재미있긴 해도 지나치게
가벼운 발상이다. 그런 고뇌 자체를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김탁환·소설가·건양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