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폭설이라는데 고도 경주에는 눈 한자락 내리지 않았다.
한 시간 거리인 부산에도 40년 만에 큰 눈이 내려 교통 대란이
일어났다는데. 미닫이 문틈으로 날씨를 가늠하다가 오랜 만에 컴퓨터를
열어보니 '날마다 내리는 눈'이란 제목이 붙은 Y의 메일이 와있었다.
"온 세상은 이미 하얗고, 그 위로 여전히 진행 중인 어지러운 폭설…
그리고 오늘 지금까지 눈 속에 파묻혀 삽니다. 발길 돌리는 곳마다
눈더미여서 가끔씩, 여기는 시방 자작나무 숲 길다랗게 뻗쳐있는
시베리아라고, 조금만 더가면 바이칼 호수가 나올 것이라고, 그런 상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Y가 메일을 보낸 1주일 전은 동화작가 정채봉 선생의 부음을 들은
날이었다. 미당 선생도 눈 오던 크리스마스에 돌아가시더니 "날마다
눈은 내리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띄운
편지였다.
프린트한 Y의 편지를 파카 주머니에 넣고 밖으로 나선다. 고분이며
잔디가 금빛으로 바랜 고도에서 설원의 시베리아를 떠올릴 순
없으나 청명한 겨울 하늘 아래 하얗게 뻗어있는 자작나무를 꿈꿀 수는
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관모, 천마가 그려진 말다래도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졌으니 자작나무란 단어에 내 발길이 저절로 대능원으로 향한다.
대능원 맞은편으로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비탈에 서있는 반월성이 보인다.
발굴 결과 500년 전후로 성을 정비하여 21대 소지왕 때부터 거주했다고
추정되는 신라 궁궐터이다. 반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가에도 얼음이
하얗게 얼었고, 요석궁으로 갈 때 원효가 건넜던 유교는 월정교 서편
옆에 흔적없이 묻혔다. 성 둘레에 도랑처럼 판 해자는 7세기 후의
유물이 출토되지 않으므로 문무왕 이후에 군사용 시설로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통일 이후 더 이상 적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라든 개인이든 역사란 '자기
지키기'의 기록에 다름 아니다.
후손을 지켜주듯 궁궐 가까이 자리한 김씨 왕들의 대능원 초입엔 노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오솔길에 깔린 블록은 정취가 없으나 숲길은 길
자체로 늘 아름답다. 나무를 만나러 숲을 산책할 때마다 곽재구의 시
'나무' 구절이 떠오른다.
‘이렇게 등이 굽지 않은
언어들은 처음 보겠구나
이렇게 사납지 않은
마음의 길들은 처음 보겠구나.’
굽이치는 송림 위로 구름이 떠가는데 그 부드럽고 자유로운 리듬은
천의무봉하다. 요즘은 길을 가다가도 구름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지켜본다. 매순간 변하지만 경박스럽지 않고, 한계를 벗어난 그 자유의
경지는 초월적이다. 구름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신혼부부인지 한복을 차려 입은 남녀가 천마총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곧
설날이라 관광객은 많지 않지만 설날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느라 한민족이
대이동 하겠지. 아랫목에서 꾸덕꾸덕하게 말려 튀긴 깨유과와 조청에
찍어먹던 따끈한 가래떡이 그립긴 하지만 나는 유목민의 후예들이 묻힌
대능원에서 설날을 맞고 싶다. 1500년의 고분들 속에서 습습한 건초
냄새에 몸을 맡긴 채 아득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면 자기 문명을 사랑했던
나의 전생이 보일 것 같다. 겨울바람에 붉어진 뺨도 유목민 같은데,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과거로의 여행은 곧 '자기 찾기'이며 '자기
지키기'로 이어지리라.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