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구호단체 소속으로 북한 병원에서 의료활동을 하고 돌아온 노르베르트 폴러첸(Norbert Vollertsen·42) 박사는 타임지 최근호(1월 22일자)에서 자신이 북한에 체류하는 동안 목격한 북한의 현실을 폭로했다. 1999년 7월 비영리 독일 구호단체 소속 의사로 북한을 방문한 그는 지난해 12월 30일 추방 당하기까지 18개월간 머물며 주로 병원을 중심으로 자신이 목격한 사실들을 노트 12권 분량의 일기로 기록했다.
북한에서 추방 당한 이후 지난 1일부터 남한에 체류하고 있는 폴러첸 박사는 지난 13일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월북을 시도하다 공동경비구역에서 붙잡혀 주한 독일대사관에 신병이 넘겨졌었다. 다음은 타임지 매킨타이어 기자의 서울발(발) 보도 요약이다. / 편집자
지난 1999년 7월 비영리 독일 구호단체 소속 의사로 북한을 방문한 폴러첸 박사는 도착 다음날 해주 인근 신원시(시)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폴러첸 박사는 북한 의사가 한 여자아이의 급성 맹장염 수술을 진행하는 것을 도왔다. 마취제가 듣지 않자 의사는 소녀의 배를 그냥 가르기 시작했고, 아이는 살을 째는 고통에 눈물을 흘렸으나 소리는 지르지 않았다. 폴러첸은 30분 동안 아이의 손을 잡는 일 외에 달리 도울 길이 없었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녀는 용감했지만, 나는 거의 울고 있었다.”
병원은 의약품과 부대 시설이 형편없었다. 세척제·소독약 등 가장 기본적인 의료품이 없었고, 의사는 수술용 장갑도 없이 수술을 했다. 수술실 시멘트 바닥엔 오랜 핏자국들이 닦이지 않은 채 눌러붙어 있었고, 환자실엔 수건도 비누도 없었다. 수도시설이 부실해 물을 양동이에 담아 날랐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수술은 밖의 빛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진행됐다.
폴러첸씨는 북한에서 외국인으로서는 드물게 ‘공화국 친선메달’이라는 훈장을 받는 등 영웅 대접을 받았다. 계기는 북한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8월 해주의 한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온 몸의 3분의 2가량 화상을 입은 채 파리·모기가 들끓는 병원 한쪽 구석에 방치돼 있던 환자를 발견하고 폴러첸 박사는 피부 이식 수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와 간호사 150여명이 자신의 피부를 제공하겠다고 나섰고, 그도 자원했다.
그 남자는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외국인으로서 자신의 허벅지 피부를 제공한 폴러첸 박사는 영웅으로 떠올라 북한의 이곳 저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훈장을 보여주면 웬만한 곳은 무사통과였다. 북한 전역에 걸친 기아와 생필품 부족으로 폐렴 등 얼마든지 치료 가능한 질병들이 만연하고 있었다. 주로 구동독에서 훈련받은 북한의 의사들은 최신 의료정보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었다.
18개월간 각지의 병원에서 근무했음에도 불구하고 폴러첸씨는 단 한 번도 심장수술이나 심지어 담석제거 등 중요한 수술이 진행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마취제·항생제를 비롯한 기초 의약품이 태부족이라 간단한 수술이면 회복될 환자들이 온갖 세균에 감염돼 있었다. 의료품을 구입할 돈이 없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환자에게 독한 곡주를 부어 고통을 완화시킨 뒤 다리를 통째로 잘라내는 장면도 목격했다. “마치 석기시대를 보는 것 같았다”고 그는 회상했다.
폴러첸씨는 외국의 식량·자원의 지원이 골고루 분배되지 않고 있는 사실에 특히 분노했다. 평양 등 주요 도시를 제외한 외곽지역에서 절망과 공포 때문에 알콜 중독자가 늘어가고 있는 사실에 눈감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규모가 작은 마을로 들어갈수록 산과 언덕엔 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묘지들로 가득했다.
특히 어린 아이들 상태가 비참했다. 남포에서는 10차선 도로를 닦기 위해 수천명의 10대 아이들이 망치로 돌을 깨서 등짐을 나르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지난 10월에는 북한 노동당 창설 55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느라 폭염과 추위 속에서도 밤낮없이 목이 터져라 예행연습을 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지켜봐야 했다. “아이들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매우 혹독한 훈련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통행이 빈번한 도로변에 술에 취하거나 다친 젊은이들이 널부러져 있어도 차량은 물론 행인들도 아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일기장에 옮기며, 폴러첸 박사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나라에서 대체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지난 11월 평양 북쪽 50㎞에 위치한 북창시(시)로 향하던 중 폴러첸 박사는 고속도로 한가운데 시체 하나가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운전사에게 차를 멈춰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 당하자 그는 차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위협, 간신히 차를 멈출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20세 전후의 군인 복장을 한 청년이었다. 목과 등 부위에 상처가 많았고, 동행했던 독일 간호사는 고문을 당한 흔적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폴러첸 박사는 “고통과 비인간적 공포감을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며, 국제 구호 단체들이 이런 사실을 도외시한 채 무조건적인 구호 활동만 펴는 것은 북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 체제의 모순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는 북한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았다. “북한은 현재 서구 국가, 특히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국제사회를 비웃고 있다. (국제사회가 인권탄압 등에 대한) 압박을 가한다면 그들은 반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 그 기회다”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