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뮤지컬 작곡자 겸 제작자,그리고 전세계를 상대하는 회사의 대표지만 가장 소중히 여기는 순간은 피아노 앞에 앉은 창작의 시간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황제'였다. 그를 만나려던 기자는 높은
벽부터 만났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그의 법인인 '정말로 쓸모있는
회사'(Really Useful Company)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일이었다. 작년 11월중 잡았던 인터뷰 약속을 그의 측근은
"미안하게 됐다"며 취소했다. 그리곤 "12월중 ALW(이 회사문서는 종종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이렇게 표기한다)가 몇주간 휴가를 간다"는
편지가 왔다. 한 관계자는 "회사 일에서 완전히 물러앉는 '절대
휴식'"이라며 "몇몇 임원 외엔 그의 행선지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절대휴식이란 음악적 상상력의 끊임없는 도약을 위한 고통스런
준비과정 처럼 보였다.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뮤지컬이라고 하면 제일먼저 떠올리는
'오페라의 유령'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를 빚어낸 사람.
지난 20년간 세계 180여개 도시에서 공연돼 남미 볼리비아
국민총생산(GNP)에 맞먹는 3억8천만달러의 수입을 올린 '캣츠'를 만든
사람. 개인재산 6억 4천만 달러로 영국 갑부 25위에 올랐던 사람. 그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시드니의 부자마을 더블 베이 거리. 이곳에 자리잡은 로이드 웨버의
아-태지역 법인 '리얼리 유스풀 컴패니'에서 로이드웨버와 10여년을
함께 일한 측근인 팀 맥팔레인 부장을 만났다.

"그의 힘의 처음이자 끝은 독창적이면서도 아주 많은 사람 가슴에
다가가는 음악을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는 때론 사무실에 며칠씩 나오지
않고 집에 있는 음악실에 틀어박혀 두문불출 곡을 씁니다."

삶의 괴로운 순간에 즐거웠던 날들을 반추하는 '메모리'(캣츠),
이본느 엘리만이 불렀던 '아이 돈 노우 하우 투 러브 힘'(지저스
크라이스트…) 그리고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에비타)등
주옥같은 선율들은 클래시컬한 품격과 대중을 주무르는 감각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이런 독창적 음악이 가능했던 것은 로이드 웨버의가 음악인이되 평범한
음악인이 아니기에 가능했다. 그는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의 귀를
열어놓은 예술가다. 그림 컬렉터이고, '와인 스펙테이터' 잡지에 표지
인물로 나간 와인 콜렉터이며, 신문에 런던 레스토랑 리뷰를 쓸 정도로
미식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맥펄레인은 파격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열린 창조 태도가 그의 최대의 힘이라고 말한다.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하되 자신이 열광했던 록 음악, 포크
발라드까지 섞었던 대담함이 70년대까지 '그 음악이 그 음악'이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일대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금으로선 하나도
신기하지 않지만 그때로선 감히 생각하기 힘들었던 대중음악과 클래식
형식의 과감한 조화를 이뤄냈다고 봅니다. 테마면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는 '누가 고양이 따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오겠느냐'는 비웃음을
뒤로 하고 '캣츠'를 성공시켰고 뮤지컬의 최대 터부인 정치 소재를
과감히 끌어들여 '에비타' 를 빚어냈지 않습니까. "

그러나 20세기 모차르트라는 말은 오늘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모두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는 예술가일뿐 아니라 세계 뮤지컬계 최고의
경영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그는 런던에 앉아서 전세계
활동중인 수천명 배우와 음악가와 세일즈 요원을 관리한다. 뮤지컬
음반과 비디오 사업, 할리우드 영화화 까지를 총지휘한다. 뮤지컬보다는
팝뮤직에 관심이 더 많은 팀 라이스와 손잡고 일하는 등 늘 정반대
인물과 놀랄만큼 잘 화합하는 그의 친화력도 성공을 오늘을 만들었다.

로이드 웨버는 "내 작품이라면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요행수에 맡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직접 챙긴다.

자신의 성공에 대해 로이드웨버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웨버의 입장은 담담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어떻게 성공했는지
나로선 설명할 길이 없다. 그냥 그렇게 돼 버렸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저 내 일에 몰두했을 뿐이다." 그는 "나의
파격은 스트라빈스키의 고전 음악 탈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늘 원했던 것은 우리 모두에게 통용 될 수 있는 새로운 용어, 곧
새로운 스타일을 찾는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나이 오십에도 청년기에
만들었던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리메이크하며 동시대를 다시 호흡하려는
그가 앞으로 또 어떤 물줄기를 뚫을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