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찾아’맨발의 순례… 환멸과 절망을 뛰어넘다 ##
우리는 모두 길 위에서 죽는다. 나고 멸함(생멸)이 없는데 가고 못 감이
있겠는가. 인간은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와서 어딘가를 향해 걷다가 길
위에서 죽는 것이다. 그러면 바람과 물이 핍박하여 몸뚱이의 눈물방울,
기름방울, 핏방울, 숨결이 흩어지고 허물 벗은 매미처럼 하얀 뼈만
남았다가 그것도 다시 먼지로 흩날린다.
혜초와 그의 도반들은 이 허무 앞에서 절망했고 절망했기에 도를
구했으며 마침내 국가와 정치, 가족을 버리고 서역의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혜초의 시대, 신라는 화려한 당나라 문화에 젖은 성덕왕 연간의
태평성대였고 당나라는 '개원의 치'라 일컬어지는 최전성기였다.
개원통보의 주조로 금융시장은 안정되고 비단과 면의 생산량 증가와
유통경제의 발달에 따른 45년 간의 장기 호황(712~756년)은 세상을
봄꿈에 젖게 했다. 장안성으로 통하는 큰 길은 수레며 마차로 미어터지고
여자들의 옷과 머리장식은 사치를 극했으며 변려체의 눈부신 문장들,
이백 두보의 당시, 환상이 넘치는 전기소설, 서화, 조각, 음악이 하늘의
별처럼 시대를 수놓았다.
그러나 이같은 물질의 번영은 그 반대편에 정신의 필연적인 속물스러움을
거느리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만큼 돈이 벌리지 않아
괴로웠으며 부자는 부자대로 주위의 미움을 받고 여기 저기서 숱하게
뜯기며 사기를 당해 인간 불신에 빠졌다. 군역에 시달리고 잡다한 부역에
징발되는 빈민들과 호화로운 집을 짓고 자녀를 당나라로 유학 보낸
부자들은 똑같이 현재에 대한 환멸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일평생 자성의 지혜를 닦으며 청빈과 경건으로
살아가려는 혜초와 같은 사람들을 만들었다. 이 새로운 지식인들에게
돈은 자신의 인생과 꿈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그들은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으며 다만 자기 자신이 되고 싶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았고 다만 자기 자신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천축국을 향한 미지의 길을 걸어 마침내 자신을 만나게 되는 맨발의
순례를 나섰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젊은이들로 아리야발마, 현태, 현각, 현유, 혜업, 혜륜,
구본 등의 이름이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 전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의 구법승들은 무수히 많다. 1908년 프랑스학자 펠리오가 돈황
석굴의 발굴문서에서 『왕오천축국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혜초도 그런
한국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혜초는 704년 신라에서 태어난 밀교의 고승이다. 16살에 당나라로 건너가
인도에서 건너온 바즈라보디(금강지)의 제자가 되었다. 19살 때
광저우(광주)를 떠나 바닷길로 벵골만에 도착한 뒤 인도와 토가리스탄,
페르시아를 여행하고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과 타클라마간 사막을 지나
당나라로 돌아왔다. 그가 쓴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 인도와 서역의
상황을 증언하는 세계 유일의 저술로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혜초의 생애가 갖는 의미심장함은 그가 끝내 신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서도 찾아진다. 세계 동서교류사의 한 장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그는 계속 타국의 산하를 떠돌다가 787년 중국 오대산의 건원보리사에서
죽었다. 그의 죽음은 후세의 한국인들에게 삶의 전부를 탈속과 구도에
바치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던 정신주의자의 한 유형을 시사한다.
고국이란 어쩌면 낡은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20세기의 개념인지도
모른다. 8세기 불교가 만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는 미련 없이 국적을
버리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들을 낳았다. 구법승이라 불렸던 이들은
출렁이는 바다로, 하늘과 땅이 맞붙은 고원으로, 모래바람이 우는
사막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돌아가다니, 도대체
어디로 돌아가느냐고 반문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자신의 전망을 자신이 개척하고 그 때문에 생긴 위기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 가는 가운데 충실함이 깃든다. 혜초가 간 길은
오늘날 지프로 가기도 어려운 천연의 험로다. "길은 거칠고 굉장한 눈이
산마루에 쌓였는데 /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 떼도 많다 / 새는 날아
깍아지른 산 위에서 놀라고 / 사람은 좁은 다리를 건너기를
어려워한다"는 혜초의 묘사에는 전혀 과장이 없다. 그는 이런 길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다리로 걸었다.
길 위에는 대식국(아랍 제국)과 천축국(인도)이, 대식국과 당나라가 일진
일퇴의 전쟁을 거듭하고 있었다. 나그네 승려 혜초는 당시의 길 위에서
가장 낮고, 힘없고, 천한 자였을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졌다. 길 위에서는 수많은 나라와 집들과 군대와 잡초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천축국의 모래바람을 거느리고 걷고 있는
혜초의 발소리는 아직도 높고, 외롭게, 쓸쓸하면서도 고결하게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울리고 있다. (이인화·소설가·이화여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