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한 해의 끝에 와 있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가을이란 전혀 오지
않을 것 같더니, 지난 가을에는 겨울이란 도저히 오지 않을 것 같더니…,
결국 올해도 크리스마스는 지나가고 연말이 되어 버렸군요.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지난 가을 유난히 빨갛게 물든 담쟁이 넝쿨이
한창이던 때 만났던 사람이지요. 오후 3시 무렵이었습니다. 나는 오후의
한적한 따사로움을 즐기려고 버클리 대학 청동 문(Sather gate) 앞
벤치를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쿠, 이럴 줄이야…」,
학생들이 가득 교문 앞을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무슨
'소리'인가가 내 옆을 스쳤습니다. 가는 노래 소리였습니다. 사람의
노래 소리는 아니고…. 나는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습니다. 나의
걸음이 '소리의 벽'에 부딪혀 선 것은 어떤 할아버지 앞이었습니다.
악기의 모양을 보는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중국인 악사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아쟁 비슷하기도 한, 줄이 두
개밖에 없는(아마 중국의 전통악기인 모양이었습니다) 현악기를 열심히
켜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무 낡아 곧 부서질 것 같았습니다. 눈을
감고, 거의 떨면서 활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장님인줄
알았다니까요. 그 많은 학생들의 발자국 사이에서 그 할아버지는 거의
무아지경이었습니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헌 중국의 전통 그림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도 같았습니다. '소리'는 마구 사람들 사이를
떠다니고 있었어요. 나는 멍하니 그 옆에 멈추어 섰지요. 그런데 나와
함께 멈추어 선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두
사람이었지요. 중국인 여학생 한 사람과 그 여학생의 애인인 듯이 보이는
백인 남학생 한 명. 여학생은 그 할아버지에게 무어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마 어떤 악곡을 주문하는 것 같았어요.

할아버지는 다시 눈을 감고 빨간 뺨을 떨며 현을 켜기 시작하였습니다.
여학생은 그 앞에 서서 감격에 겨운 얼굴 표정으로 노래를 들었습니다.
거의 눈물을 흘릴 것 같았습니다. 그 백인 남학생은 주머니에서
1달러짜리를 꺼내고 있었고…. 악곡이 다 끝났는지, 할아버지는 눈을
떴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쉬운 듯이 할아버지에게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 여학생을, 백인 남학생은 거의 부축할 것처럼 껴안아
일으켰습니다. 여학생은 자꾸 뒤를 돌아보며 남학생에게 거의 끌리다시피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뺨이 빨간 그 중국인 악사 할아버지도 오늘 일은
끝났다는 듯 주섬주섬 자리를 걷으며 일어섰습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노란 은행잎 한 장이 온몸을 비틀며 뒹굴었습니다.

아마 그때 그 여학생은 고향의 노래를 들었던 것일 것입니다. 아니면
사랑의 노래를? 아무튼 나는 노래의 힘에 대해서 새삼 생각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현대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워 하는 것에 대해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가끔 고향의 노래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렇게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 고독하지 않은 척 하지만 고독한 사람들, 버클리 대학의
청동문 아래서 나는 그러한 고독의 얼굴들과 발자국들을 다시
보았습니다.

12월이 저물었습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2000년의 12월, 그리고 2000년
12월의 바람이. 「…붕(鵬)이 남쪽 바다로 날아갈 때는 파도를
일으키기를 3000리,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오르기를
9만리…」(장자·소요유).

나는 그 바람에 올라앉기라도 하듯 중얼거립니다. '올해도 교만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곧 버리리이다'라고요.

(시인·동아대교수·버클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