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들이 보낸 사연으로 만들어지는 독자면엔 우리 사회
중산층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다.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으며 무엇에
기뻐하고 또 무엇에 분개하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정치-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 오늘 이만큼 살게됐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난 한해 조선일보 독자면에 비친 독자들의 삶은 건강했고 슬기로웠다.
정부의 IMF 극복선언에 이어 정부의 자화자찬이 잇따르자,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어려운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1.4·최민철)고 일침을 가한
것도 옥자였고 닷컴기업이 한창 호황을 누릴 때 "크리스마스 캐롤을
여유있게 들을 수 있는 닷컴기업인이 얼마나 될까."란 경고를 한 것도
(8.10·김진혁·솔로몬에셋상무) 조선일보 독자였다.

독자들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할말이 많았다. "지난 이틀동안
그(김정일)가 갑자기 민족의 영웅이 된 것 같은데 왜 갑자기 그가
칭송대상이 돼야 하는가."(6.16·곽성근·수출업)는 의문에서부터 "왜
김 대통령의 카운터파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아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가."(6.15·심영재·회사원)란 지적까지
독자들은 국가 정체성 상실과 체면 손상을 걱정했다.

독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그러나 삶 그 자체였다. 한여름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스레기를 혼합해 말리면 악취가 제거된다는
아이디어(김명자·주부ㆍ8월12일)가 실리자 "그렇게 하면 악취는 제거할
수 있을지 몰라도 쓰레기 분리수거 취지에는 맞지
않는다"(구혜경·주부ㆍ8월15일자)는 반론이 나왔다. 뉴질랜드에 살다
온 주부는 자치단체들이 지역마다 쓰레기봉투를 다르게 사용하는 것
때문에 이사갈 때마다 불편을 겪고 있다면서 "자치단체들이 상의해 같은
봉투를 사용하도록 해달라"(10.27·이경숙)고 제안했다. 아파트
주차방식을 놓고는 '환경보호를 위한 전면주차'와 '어린이 안전을
위한 후면주차'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한 지혜와 이를 공유하려는 애틋함이 돋보이는 편지도 한두통이
아니었다.

독자면은 감동을 나누는 모두의 마당이기도 했다. 밤길에 연탄배달
경운기를 몰고 가는 노부부를 위해 뒤에서 헤드라이트로 보호하며 가던
경찰 순찰차를 보고 "국가원수 경호 때 모습보다도 더 엄숙해보였다.
우리 국민은 이런 경찰을 언제나 믿고 의지하고
있다"(12.19·정현민·버스운전자)는 사연이 나가자 이틀뒤 "비록
경찰관의 길이 어렵고 힘들지만, 아직은 따뜻한 눈길이 많음을
확인했다"(12.21·신성호 과천청사 경비대)는 20대 경찰관의 다짐이
이어졌다.

독자들의 높은 판단력, 사려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투고도 적지
않았다. 올림픽 축구 대진표만 보고 8강 진출 가능 운운한 이른바 축구
전문가들에 대해 "모로코나 칠레는 해볼만한 상대라고 평가하는데 무슨
근거인지 모르겠다."(6.10·강채훈·회사원)고 나무랐는데, 실제로
이말이 맞았다.

독자면은 공공기관에에도 활짝 열려 있었다. 주한 대만대표부 공보관은
ASEM에 초대받지 못한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고,
서울지법 파산부 판사는 워크아웃 기업 경영진이 아마추어로 채워진다는
보도에 항의했다. 보선 투표율이 낮을 것을 우려한 대구 선관위 직원은
"보선에 관심갖자"고 촉구했다.

우리네 아프고 신산한 삶의 얘기도 가감 없이 전해졌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는 말기 폐암환자, 아내가 암환자인 시골노인, 백혈병에 걸린
아이를 둔 주부, 입양아를 들인 양부모, 아내의 불륜사실을 확인하고
괴로워하는 남편, 남편 외도로 이혼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얘기가 실려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독자란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서울 안국동에 장애인을 위한 횡단보도
설치를 요구하는 투고를 통해 이를 관철한 한 시민은 일이 성사된 후
독자부로 전화를 걸어 "다른 것은 필요없고, 조선일보 독자면에 한번
실리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