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후 김대중 정권 내 대미 외교전선에 당황하는
기색이 나타나고 있다. 김대중 정권이 고어 후보쪽을 지지·지원했던
만큼 대미 외교가 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김 대통령이 공화당에도 인맥을 갖고 있다"고 애써
설명했으나, 이곳 상황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점은 대미 외교 전선의
실무자나 미국과 접촉해온 경제인들이 인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김대중 정권과 부시 정권의 핵심 인맥 사이에 끈끈한 접점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부시와 연결시켜 주겠다'며 몇몇 교포와
거간들이 청와대와 민주당 주변을 들락거린다는 소문도 김대중 정권의
허점을 파고든 상행위라는 분석이다.
부시 등장 이후 햇볕정책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은
적지 않았으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부시 정권과의 관계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제2의 경제위기가 올 때, 통상마찰이 발생할 때,
그리고 주한미군 문제 등 숱한 현안이 발생할 때 한국이 몰리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미 부시팀과의 진한 인맥도 없는 상황에서 불길한 징조들이
나타났다. 그 중 하나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이 김정일과의
거래내용을 미국이 납득할 만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점이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미 국무부 주변에서 한국을 의심하는 발언이
쏟아졌고, 지금도 외교 실무자들 사이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남아있다. 두
나라 대통령 사이에 햇볕정책을 둘러싼 이견은 없는 듯하지만, 미 외교
실무자들의 불만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이는 대통령
혼자 성층권에서 대미관계를 처리하는 '1인외교'가 빚어낸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불길한 사건은 클린턴의 방북문제다. 누가 봐도 이상한
클린턴의 임기 말 방북 추진에는 '김 대통령의 희망사항'이라는 단서가
붙어있다. 이는 부시쪽에서 볼 때 김대중·김정일 정권이 새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서둘러 중요한 일을 해치우려는 '부시 기피' 전략이라고
해석하기에 충분하다. 공화당이 햇볕정책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부시
기피로 간다면 괘씸죄도 보통 괘씸죄가 아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앞으로 몇 달 안에 김대중 정권은 부시 정권과 튼튼한 '다리'를
조립해야 할 중대 국면에 직면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은 내가 잘 안다'는 식으로 대통령
혼자 대미관계를 좌지우지하는 1인외교에서 탈피, 직업 외교관과 민간
경제계, 군·학계 등이 모두 참여하는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부시가문과 오랜 교분을 가져온 모 그룹 회장도 있고, 미 공화당
인맥이 참여하는 양국 21세기위원회를 거의 매년 개최해왔던 인사도
있다. 전임 주미대사 중에도 나름대로 공화당쪽 인물과 친분을 가진
사람이 있으므로 이들을 모두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현재의 외교·안보팀 장관들은 워낙 대미관계에 허약하고 외교부의
대미 실무라인도 호텔 예약, 일정 조정, 문서 전달 등 여행사 직원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외교밖에 못 해온 점을 인정하고,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이 대미 창구 전면에 나서는 체제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26년 전 동두천에서 미군 대대장을 맡았던 콜린 파월 신임
국무부장관은 "한국 근무시절이야말로 나의 인생에서 자신감을 갖게
만든 전환점이었다"며 우호적이다. 더구나 부시 정권이 햇볕정책의
속도와 방법, 그리고 과정을 문제삼을 뿐, 정책 방향이나 목표 그 자체를
반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외교부도 기존 인맥을 활용해 '부시 줄 대기'에 나섰다지만, 부시
팀의 아시아 정책 담당 후보자들이 한국에 왔을 때 고위 인사들이 면담을
거절, 홀대했다는 불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미 외교가 부시 기피
인상을 주기보다는 큰 흐름에 순응하는 자세를 취하는 편이 현명할 것
같다. (워싱턴 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