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분들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계속 일하고 싶습니다.”

충북 충주시 산척면사무소(면장 김병옥)는 새벽 5시 30분에 어김 없이 잠에서 깨어난다. 직원들도 출근하지 않았고 민원인이 찾아올 시간도 아닌 꼭두새벽에 문이 열리고 불이 훤하게 밝혀진다. 새벽의 정적을 깨는 주인공은 1급 지체장애인 정한수(57·산척면 송강리)씨. 정씨는 면사무소 정식 직원이 아니다. 사무실 주변 청소와 잔심부름을 해주는 비정규직 ‘사환’이다.

정씨가 면사무소에 출근하기 시작한 것은 25년전인 지난 75년부터. 당시 면사무소 직원들은 소아마비를 앓아 거동이 불편한 데다 직업 없이 고생하는 노총각 정씨의 딱한 사정을 접하고 사환으로 채용했다. 공무원 직제규정에 따른 정식 채용이 아니라 자신들의 박봉을 쪼개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방식이었다. 이후 직원들은 매달 봉급수령액의 2%를 떼어 정씨에게 전달해오고 있다.

정씨의 일과는 아침 일찍 출근해 사무실 내부와 마당을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낮시간에는 우편물 수령, 서류 전달 등 잔심부름을 한다. 한글을 전혀 모르지만 면사무소 20여개 열쇠꾸러미의 용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신문도 제호모양을 보고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하다. 직원들은 정씨를 ‘아제’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한 번도 결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나와 성실하게 일하는 정씨를 아저씨나 친형님처럼 대해 주고 있다.

현재 정씨가 받고 있는 ‘월급’은 겨우 23만여원. 2급 지체장애인인 부인(42)과 노모(79)를 보살펴야 하는 그에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IMF이전 26명에 이르던 면사무소 직원이 구조조정에 따라 13명으로 줄어들면서 정씨에게 지원되는 생활비도 반 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정씨는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틈만 나면 사무실 주변과 마을을 돌며 재활용품을 수집하지만 한 달에 고작 몇 만원을 손에 쥘 뿐이다. 그러나 정씨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일자리를 마련해 준 직원들의 배려를 저버릴 수 없죠. 돈 한 푼 안 받아도 좋으니 사무실에 나가게만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면사무소 남병훈(48) 총무계장은 “생활비를 더 많이 보태주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무척 가슴이 아프다”며 “아제가 희망할 때까지 면사무소에 나오실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