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서구의 권위지들은 연말이 되면 「올해의
책」(Books of the year)을 선정해 발표합니다. 편집자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좋은 책」을 골라 출판계의 한 해를 결산하는 것이지요.
신문마다 추천된 책들을 들여다 보면, 그 사회의 지적 풍향과 수준을
어림 짐작할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저희 Books팀도 한 해를 결산하며 「올해의 책」을 뽑기로 했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한 끝에 올 한해 활발했던 출판사들을 뽑아
「출판사의 꽃」이라 불리는 편집장에게 좋은 책을 추천케 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40명의 편집장이 5권씩을 추천했으니까 모두 200권이
선택된거지요. 물론 자사에서 출간한 책은 빼도록 했지요. 그러나
출판사 색깔과 편집장의 개성이 워낙 다양한 관계로 복수 추천된 책이
많지 않아 리스트에 오른 책은 120권이나 됐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추천된 책을 10권 골랐습니다. 당초 베스트10을 골라 순위를 매길
계획이었지만, 「체 게바라 평전」을 제외하고는 고만고만해 1위만 뽑고
순위를 매기지는 않았습니다. 10위 안에 든 책들은 4명이상의 편집장이
추천한 책들입니다.

추천된 책들을 살펴보니,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니다」라는 통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올해 서점가를 뜨겁게
달궜던 「가시고기」 「국화꽃 향기」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를
추천한 편집장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특히 문학 분야에서 박완서
이문구 황석영의 소설이 나란히 「올해의 책」으로 꼽혀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문단의 젊은 작가와 출판 관계자들을 머쓱하게 했습니다.

올해 시장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경제경영서와 어린이책 들은 10위 안에
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와 「해리포터」뿐, 전체 추천목록에서
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좋은 책」축에는 끼지 못했습니다.

추천된 책들을 보면 국내 출판사 편집장들의 이념적 지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체 게바라 평전」같은 책은, 이를테면 상당수 편집장들이
평소 품고 있던 「내 마음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문제는
베스트셀러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는 편집장으로서 「내 마음의 책」을
실제로 얼마나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겠지요. 『대중서로 돈을 벌어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자기다짐이 그래서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