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 장시간에 걸쳐 패자 고어 위로...고어, 깨끗한 승복 ##
미국이 지난 35일간의 대선 투쟁을 끝내고 분열 치유에 나섰다. 그
앞장을 선 것은 13일 당선자로 확정된 조지 W 부시와 낙선자인 앨
고어다. 두 사람은 이날 밤 각각 대국민 연설을 통해 한 목소리를 냈다.
'단결(unity)' '화합(harmony)' '초당적(bipartisan)'이라는
단어들이 두 사람 연설의 대부분을 장식했다.
부시는 이날 연설장소를 일부러 텍사스 주 하원의사당으로 택했다.
민주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이다. 그를 연단에 소개한 사람은 민주당 피터
레이니 주 하원의장이었다. 그는 "주 의사당은 그동안 양당 협력의
무대였다"면서 "이 같은 협력 정신이 워싱턴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초당협력을 통해 국민통합을 이뤄낼 적임자라는 자신감을 밝힌
셈이다.
부시는 또 고어를 위로하는 데에 연설의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고어와 그 가족이 얼마나 힘든 순간인지 이해한다"며 국민들에게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호소했다. "부시가 승리를 훔쳐갔다"는
민주당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한 제스처였다.
부시는 또 공교육, 노인의료보험, 세금 감면, 외교정책 등 선거기간 동안
고어와 이슈대결을 펼쳤던 정책을 열거하며, "세부적인 사항에서 우리는
차이를 보였지만 더 큰 공감대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향후 정책결정
과정에서 민주당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메시지라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고어는 이에 앞서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시인했다. 비록 『연방대법원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부시 당선자를 위해
단결하자고 거듭 촉구했다. 그는 "국민들, 특히 나의 지지자들에게 차기
대통령 뒤에서 단합해주기를 요청한다"며 "이제 정치투쟁은 끝났으며
모든 미국인의 공동선을 위해 다시 끊임없이 노력할 때"라고 말했다.
CNN 방송 등은 그가 이날 연설을 통해 '불쌍한(sore) 패배자'가 아니라
'훌륭한(decent) 패배자'가 됐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이날 '싸울 때와 단결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미국의
전통'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두 사람이 호소한 것은 애당심이 아니라
애국심이었다. 미 언론들도 일제히 단결을 호소했다. 5주 전의 선거일에
있었어야 할 두 사람의 연설이 치열한 정쟁 끝에 뒤늦게 나온 데 대한
국민적 우려감이 큰 탓인지, 갈등 치유에 총대를 메는 분위기였다.
워싱턴포스트는 14일자 사설에서 "두 사람은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옳은
메시지를 보냈다"며 "진정한 초당협력은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의회의
공화, 민주당에도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고어를 강력히 지지했던
뉴욕타임스 역시 같은 날짜 사설에서 "국민의 대다수는 부시의 지도력을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고 믿는다"며 "가까스로 승리한 대통령이 꼭
약한 대통령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라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0년 닉슨에게 신승한 케네디 전 대통령을 예로
들었다. 두 사람이 예상보다 빠르게 오는 19일 회동키로 한 것도 미국
언론들은 높이 평가했다.
USA 투데이·CNN·갤럽이 이날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의 80%가
부시를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주까지의
각종 여론조사에 비해 훨씬 늘어난 숫자다.
앤드루 카드 백악관비서실장 내정자는 "부시 주지사는 텍사스에서 많은
민주당원들을 요직에 앉혔다"며 "그는 대통령으로서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는 내주 초 민주당 의회 지도자들도 만나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하지만 두 후보의 이날 수사와 언론의 여론조성이 미국 정치의
갈등을 쉽게 극복할 것이라고 단정키는 어렵다. 부시는 태생적으로
'반쪽 당선자'이고, 미 의회도 비록 공화당이 상하 양원에서 다수당을
유지했지만, 민주당과 백중세로 양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