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정말 밉습니다.”
얼마 전 취재차 만난 서울 강남의 한 중산층 주부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미움은 애정이 떨어질 때 증폭된다. 정치적으로 평생 DJ를
지지했던 그녀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도 당연히 DJ를 찍었다고 한다.
집권 초기엔 경제를 살리는 것 같아 그를 믿고 평생 해보지 않았던
주식에도 돈을 넣어보고, 벤처기업을 육성한다고 해서 벤처 투자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로 나타났다.
"자기만 노벨상 받으면 뭐합니까.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란다. 강남의 중산층 이웃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대통령 욕하기에 바쁘다고 전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은 비단 장바구니 들고 시장에서 한숨 쉬는
주부들뿐만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상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재계
사람들은 현 집권층의 능력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A씨는 "IMF
초기에 기업의 구조조정에 불을 지핀 정부의 역할은 칭찬할 만하지만
집권 기간 내내 불만 지필 것이냐"면서 "구체적인 사업 선택에까지
정부가 개입하려 하고, 노사문제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정말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물론 집권층으로서도 억울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주식 투자건 벤처
투자건 모두 투자자 자신의 책임하에 하는 것이니 투자 손실은 100%
집권층의 책임일 수만은 없다. 또 국내 경제 추락엔 국제유가 폭등, 미국
경기 둔화와 나스닥 폭락 등 외부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이야 무엇이든 경제가 나빠지면 손가락은 정부, 특히
청와대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현상도 아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숱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미국 경제의 장기 호황 때문이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그런 요즘, 청와대는 김 대통령의 20년 전 옥중 사진 6장을 공개했다.
머리를 박박 깎은 김 대통령이 수감되어 고통받던 시절의 모습이다.
아마도 노벨상 수상 행사를 앞두고 김 대통령의 역정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 위해 공개한 듯싶다.
김 대통령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것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
문제는 지금 경제 침체로 고통받는 대다수 국민들은 더 이상 박수칠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랑스러운' 사진이라도 지금 공개한 것을 보면 현
경제 위기에 대해 청와대가 갖고 있는 위기감의 수위가 여전히 민심과는
괴리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노벨상 수상의 영광은 경제가 살아나면 자연스레 더욱 부각될 것이다.
노벨상을 받고 귀국하는 대로, 아니 노벨상을 받으러 가는 길에서부터
온통 한국 경제의 재건을 위한 정책 구상과 실천에 힘을 쓰길 주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