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막한 2000년 겨울...실직자 한꺼번에 몰려 일용직도 별따기 ##
## "해고 1번지" 은행가선 "한탕하고 튀지" 유행어 ##


공공·금융부문 구조조정으로 실업 한파가 몰아치면서, 기업체 현장
곳곳에서 IMF 직후 연출됐던 우울한 풍경이 3년 만에 재연 되고 있다.

7일 오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법원의 법정관리 개시 결정과 함께 직원
3500명의 감원이 확정된 공장에는 우렁찬 굉음 대신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는 무거운 분위기로 착 가라앉아 있었다.

"석달 만에 월급이라고 받은 게 76만원입니다." 18년간 일했다는 직원
최모씨(44)씨는 "돈 벌겠다며 공장에 나갔다가 손가락이 잘려 돌아온
아내가 병실에서 '나으면 포장마차라도 하자'고 말하더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마지막 남은 재산인 18평짜리 시영아파트까지 내놓았지만 최씨
가정의 앞에는 한겨울 세찬 바람보다 더 황량한 감원의 태풍만
어른거리고 있다.

"일당 4만원입니다. 그나마 4만5000원씩 하던 품삯이 대우 직원들이
몰려 나오면서 떨어졌답니다. 먹고 살기 바빠 이제 체면 차릴 정신도
없습니다." 부평시 인근 공사장에서 모래를 실어 나르느라 어깨가
벌개진 직원 박모(45)씨의 말이다.

20일 파산이 진행되면서 1000여명 직원 전원이 거리로 내몰리게 될
㈜한양. 90년 입사했다는 정모(43)씨는 "회사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의료보험도 안 되는 줄 알고 다니던 병원도 못 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10년간 일한 그에게 남은 것은 은행 대출금 2700만원, 회사 대출금
1000만원, 사채 2000만원 등 모두 5700만원. "전업이요? 평생 현장만
다니던 우리들이 어디 가겠습니까. 그나마 돈 좀 있는 동료들은 이런
한국이 싫다고 캐나다 이민을 알아보고 있더군요."

한때 '국내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다 IMF를 맞으면서 '해고 1번지'가
된 모 은행 직원 박모(35)씨는 "전직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싶어도 그러다
윗사람들에게 찍히는 것 아닌가 두렵다"며 "요즘 은행원들 간에는
'차라리 크게 한탕하고 튀자'는 말이 유행"이라고 말했다.

'IMF 졸업' '경제우등생'이라 자랑만 일삼아오던 정부가 뒤늦게
일자리를 창출한다, 고용정보를 제공한다며 부산을 떨고 있지만 일선
실직자들은 별반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3개월 전 회사 부도로 직장을 잃은 이모씨는 "31살밖에 안됐는데 나이가
많다는 말을 듣는다"며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도 취업이 안 되는데 나
같은 사람이 갈 곳이 있겠느냐"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노동부 산하 각 지방사무소와 고용안정센터 등에는 최근 들어 부쩍
구직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한동안 주춤했던 각종 취업 및 자격증
박람회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일부터 여의도 종합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자격증 박람회에 참석한 박모(27)씨는 "고교와 전문대학 재학때
자동차 정비기능사, 건설·기계 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제조업이
불황이라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며 "다시 정보통신쪽 자격증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3년전 했던 정책을 재탕하는 사이, 한동안 줄어들던 서울역에는
노숙자의 행렬이 소리없이 이어지고 있다. 98년 11월 운영하던
가죽공장이 망한 뒤 아내가 가출하자 19개월 된 아들을 보육원에 맡기고
일터를 전전하던 배모씨(35)씨는 "올 3월부터 일이 뚝 끊겨 결국
이곳으로 왔다"며 "얼어죽지 않으려고 밤마다 강소주를 마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