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네 살의 현역 운동선수가 있다. 그것도 스포츠 종목 중 가장 부상
위험이 많고 힘들다는 미식축구 선수다. 서울대 졸업생들로 구성된
클럽팀 '스칼라스(Scholars)'의 수비수 이정호씨. 1946년생인 그는
"환갑이 넘도록 미식축구를 하고 싶다"고 기염을 토한다.
서울대 농대 65학번인 이정호씨는 현재 미국 LA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수의사로 일하다 5년 전 이민을 갔다. 지금은
한국에 고기를
수출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이정호씨는 지난 7월부터 모국에 머물고
있다. 자신이 가족만큼 사랑하는 미식축구를 하기 위해서다.
일반인들은 미식축구의 불모지로 생각하지만 한국엔 지금 57개의
미식축구팀이 있다. 대학팀이 36개, 사회인 클럽팀이 21개다. 대회는
춘계 및 추계 리그가 있으며 매년 겨울 토너먼트로 챔피언을 가린다.
대학 챔피언 결정전은 타이거볼, 사회인 리그 결승전은 서울 슈퍼볼로
불리며, 대학 우승팀과 사회인 우승팀이 맞붙는 한국 미식축구 최강전은
'김치볼'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이정호씨의 포지션은 디펜시브 라인배커. 수비 진영 한 가운데서 상대
공격의 흐름을 파악, 차단하는 역할이다. "한창 땐 상대 쿼터백을
쓰러뜨리는 '색'도 심심치 않게 성공시켰지만 이제는 심한 태클은 하기
어렵죠. 하지만 아직 태클에 실패한 적은 없어요."
이씨의 체격은 1m72에 73㎏. 우람한 체격은 아니지만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 1학년 때 미식축구에 빠진 후 지금까지 한 400
경기쯤 뛰었을 겁니다. 많이 다쳤죠. 갈비뼈 부러지고, 목뼈도
어긋나고…. 한번은 무릎 인대가 끊어져 6개월간 목발 신세를 진 적도
있죠." 이씨는 그러나 "팀의 승리를 위해 모든 선수가 자기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하는 미식축구는 가장 훌륭한 인생 선생님"이라며
'미식축구 예찬론'을 펼친다.
이씨는 아들뻘 되는 후배들과 함께 운동하는 기분을 묻자 "운동장에
나가면 다 팀의 일원으로 주장의 말에 복종하고, 팀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딸만 셋을 둔 이씨는 "만약 아들이 있었으면 우리 집
살림살이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요즘 서른 살만 되면
노장이라는 소리가 나오는데 나는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운동장에 설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