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식의 틀을 깨부수고 나를 불어넣어라"...사회학이 테마 제공 ##
##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직관'...생활 속에 영감이 서려있다" ##


인터넷과 멀티미디어가 홍수처럼 범람하는 정보의 방목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 반복과 상투적인 것을 싫어하며 늘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심성에 정확히 들어맞는 작품을 내놓으며 디자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바로 데이비드 카슨이다. 그는
1980년대말 이래 150여개의 주요 디자인상을 휩쓸며 매번 파격적
디자인으로 화제를 뿌리고 있다. 지난 10월말 '2000
세계그래픽디자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데이비드 카슨을
만나 디자인의 첨단 경향과 미래에 대해 들었다.

―당신은 늘 새로운 소재를 '발견'해서 표현해 온 것이 남다르다고
느낍니다. 가령 일반적으로 잡지의 경우, 제호는 고정된 것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독자들 입장에서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레이 건' 같은 음악잡지 제호의 글자체를
매번 바꾸고, 활자의 좌우를 바꿔버리는 등 상식의 틀을 깨고 있습니다.
당신은 작업의 영감을 주로 어디서 얻습니까.

"'발견'? 맞는 말씀입니다. 디자인은 어쩌면 발견이지요. 저는
발견의 영감을 제가 사는 주변 환경에서 얻습니다. 사는 것, 체험하는
것이 모두 디자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사진을 찍습니다. 그
사진들은 간접적으로 제 작품에 등장합니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디자인은 무척이나 개인적이고 사적이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시각디자인은 시각적 요소를
정돈하는 데 치중했고 소비자들도 그것에 익숙해 있는데 당신은 그
정연함을 깨고 있다고 보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도
디자인은 개인적이고, 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당연합니다. 제 소신은 제가 작업하는 일에 저를 집어넣는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일에 대해서 중립적이기가 불가능합니다.
중립적이란 것은 다른 쪽에서 보면 상투적인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즐기고 있는가. 바로 나를 투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자이너는 이를 통해 디자인에 부가가치를 불어넣습니다. 저는 결국
저의 독자성으로 차별화된 디자인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은 글로벌 경제 뿐 아니라 거의 전분야에서 엄청난 세계화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문화의 중심 활동으로서
지역 디자인의 중요성도 더욱 부각되고 있습니다. 문화,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 세계화와 지역화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국의 디자인은 한국에서 온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자인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것보다는 어떤 지역의 특정한 정열과
살아가는 방식이 반영된 디자인이 훨씬 더 매력적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정된 모범답안을 피하면서, 디자인
개념을 확대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순수예술과 디자인 사이에는 "예술이다"
"아니다"하는 견해차가 뚜렷한 편입니다.

"미국의 대표적 디자이너 폴 랜드는 '예술과 디자이너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둘 다 형태와 내용을 가지고 작업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그래픽 디자이너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지 예술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나는 '그렇다면 순수예술은 소통하지 않는다는
뜻인가'고 반문합니다. 소통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요."

―당신은 디자이너로 입문하게 된 과정도 특이합니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은데 따른 불편함은 없습니까. 또 사회학을 공부한 게
디자인 작업에 도움이 됩니까.

"사회학 공부는 디자인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사회학자들의
연구테마 중 임종 유언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많은 유언을 조사한 결과,
모든 죽는 이들의 테마는 '후회를 하거나 안하거나'였다고 합니다.
연구 결과 '많은 이들이 그들이 했던 것에 대해서는 후회를 안하고,
못해본 것에 대해 후회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고, 생각나면 '막바로 그냥 한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스케치고
뭐고 디자인할 때 그냥 뛰어듭니다. 또 한 가지, 체계적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금기를 모른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

―좋아하는 단어 10개만 써 보시죠.

(그는 이 질문을 받고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후딱 썼다.) 마음, 직관,
사랑, 느낌, 가족, 감정, 주관, 사적, 듣기, 경험, 현실, 평화.
(이어서 또 열 개를 더 썼다.) 탐험, 실험, 위험(risk), 좀더 큰 위험,
도달, 확장, 주관, 해석, 느끼다.

―당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직관 (intuition).”

―직관은 교육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 '명암을 제대로 디자인하는 10가지 요령'을 가르칠 수는
있겠지만, '직관적인 디자인의 10단계'를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가 비행기 시험 조종사였다고 하던데,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없었나요.

"한마디로 '용기'입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미국에서 시험 조종사사 되려면 서약서에 사인을 해야 하는데, '임무
수행 중 사망할 확률이 50퍼센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어떻습니까. 디자인을 하는 도중 이 활자체를 사용할지, 저
활자체를 사용할 지에 대한 결정은 제 생명을 위협할 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저는 얼마든지 실험할 수 있습니다."

―요즘 디지털 문화의 확산과 함께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터넷 웹
디자인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습니다. 웹 디자인의 전망과 발전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웹디자이너는 직장 구하기 쉬우니 누구나 쉽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좋은 인쇄물 디자인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좋은
인쇄 매체 디자이너들이 해놓은 웹 디자인이 더 좋은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뭔가에 몰두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일이 아니다. 그게 바로 즐기는
것"이라는 카슨은 인터뷰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 직관과 영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지성이란 어떤 것을 발명하는데 극히 작은 역할만을 한다. 의식이 한
단계 뛸 때 필요한 것은 영감이다. 그러나 영감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안상수·홍익대 교수·시각 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