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중국: 다시 호적에 대해

▶ 2000/12/5

차이나클럽 회원여러분 안녕하십니까? 李範眞기자입니다.

지난번 중국의 호적 이야기를 소개해 드린 이후로 "호적 이야기를 좀 더 해달라"며 몇 분이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보여주신 관심에 감사드리며 아는 대로 그리고 들은 대로, 호구(戶口;후커우) 이야기를 좀 더 전해드리겠습니다.

◆ 공안국에서 관장

메일을 보내주신 분 중에 한 분은 "북경(北京:베이징)에서 대학을 나오면 북경의 호적을 취득할 수 있다고 들었다"며,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북경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북경의 호적을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위의 경우 이 사람이 북경의 호적을 받으려면, 우선 그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든가 아니면 학교의 연구나 사업을 도와준다든가 해서 그 학교에 기여한 바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 측에서도 그 사람의 공로를 인정해 "이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린 뒤, 필요한 서류를 준비·기재해 공안국(公安局)에 요청, 승인을 받아야 비로소 호적의 변경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원칙적인' 절차일 뿐이며, 요즘 들어서는 이러한 경직성이 많이 약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면 재학하는 동안 호구가(임시긴 하지만) 대학으로 옮겨지고, 직장(특히 정부기관이나 국유기업, 대기업 같은 경우)을 얻으면 그 곳으로 호구가 옮겨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사정에 정통한 어떤 분께서 "대도시의 경우는 요즘 들어 첨단 기술관련 창업이나 아파트 구입 등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 도시의 호구를 주는 사례까지 있다"며 "상해(上海:상하이)의 경우 포동(浦東:푸둥)지구 아파트 판매가 부진하자 외지인이 이를 구입할 경우 상해 호구를 주겠다고 발표한 적도 있다"고 말씀해 주시더군요.

◆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호적 변경이 합법도 아니고 불법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라는 점입니다. 안되는 것을 돈을 주고 억지로 바꾸는 것은 불법이지만, 해당 지역의 해당 조직이 "이 사람이 필요하다"는 서류를 갖춰 호적 변경을 요청하는 것은 합법이라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 사람이 필요하다, 필요치 않다 하는 점을 판단할 기준이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별로 필요치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자기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지요. 그래서 중국 공안 당국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충 눈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호적 변경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심해지지만 않는다면 구태여 일일이 조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중국인 특유의 표정이 생각나는군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습니다만, 호적의 이동은 시골에서 소도시로, 소도시에서 중·대도시로 옮겨가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의 지역 단위는 성(省)> 시(市)> 현(懸)> 향(鄕)> 촌(村)의 순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시에서 성으로, 현에서 시로, 향에서 현으로 옮기려 할 때 발생합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여기나 거기나 비슷하다면면 구태여 돈쓰고 빽쓰면서까지 옮길 이유가 없을 테지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여건에서, 좋은 환경과 발달된 문물을 접하며 살려는 욕망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해 가며 호적을 옮기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 '좋은 직장' 기준 되기도

우리나라가 중국과 국교를 트면서, 한 때 중국 남부 광동(廣東:광둥)성 인근에서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인력 구하기가 그야말로 '별따기' 였던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호적때문이었습니다. '한-중' 두 나라 언어에 모두 능한 사람이라면 일단 떠오르는 것이 우리 동포인 조선족들인데, 이 사람들이 그놈의 호적때문에 남방으로 내려오기가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광동 지역에 진출한 우리 회사들은 저마다 최고 수준의 임금을 내걸고 조선족 엘리트 스카우트 경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 때 괄목할만한 힘을 발휘한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짐작하셨겠지만 이 경우에도 역시 호적이었습니다. 임금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자 "호적을 옮겨주겠다"는 제안을 한 회사에 인재들이 몰렸고, 이를 안 경쟁사들은 "그렇다면 가족들의 호적도 함께 옮겨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면서 경쟁에 불을 붙였다고 하더군요.

물론 정보에 굼뜬 일부 회사들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경우가 되고 말았습니다. 중국에서 호적이 차지하는 비중을 이해하지 못했던 탓에 낭패를 보고 만 셈이지요.

( 李範眞드림 bomb@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