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후문으로 들어와야 (연구실이) 가깝다는 소리를 전날 들었음에도
신촌의 초겨울 풍광에 넋잃고 있다가 정문에서 내려버렸다. 덕분에 꽤
다리품을 팔아야 했지만 대신 웅숭깊은 은행나무와 활력 넘치는 젊음들,
그리고 그 생명들이 주는 여유를 잠시 누렸다.

7번째 시집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민음사)을 낸
김승희(48ㆍ서강대 국문과 교수)시인은 서강대 캠퍼스 빨간 벽돌 건물
속, 자그마한 연구실 안에 숨어 있었다.

"우리 시대 풍경에 대한 산문적 욕망이 좀 있었어요. 우리의 무의식을
구성하는 힘에 대한 진찰이라고 할까? 소설과 산문에 욕심을 쏟다 보니,
이번 시집은 한 5년 만에 나왔군요."

시인은 뒤틀린 사회가 분출하는 뿌리깊은 보수성, 개인에게 가해지는
억압, 가부장제의 폐해, 자본의 속성 등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특유의
전복적 상상력을 풀어놓는다. 정작 망자의 이름은 찾을 수 없고 자손들의
직함만 주렁주렁 달려있는 신문 부음란에서 발견되기도 하고('한국식
죽음'), 위험하니까 손잡이를 잡으라는 위협(?)이 붙어있지만 정작
손잡이를 찾을 수 없는 심야 좌석버스에서 드러나기도 하며('한국사
강좌'), 노래 안 부르는 사람은 마치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사람처럼
만들어 버리는 노래방에서 표출되기도 한다.('한국은 노래방')

'식탁이 밥을 차린다/밥이 나를 먹는다/칫솔이 나를
양치질한다/거울이 나를 잡는다 그 순간 나는 극장이 되고/세미나 룸이
되고/흡혈귀의 키스가 되고/극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거울이 된다/캘빈 클라인이 나를 입고/니나리치가 나를
뿌린다/CNN이 나를 시청한다/(중략)'('식탁이 밥을 차린다' 중에서)

스팀 증기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침 연구실은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따사롭다. 현실의 언어를 뒤죽박죽으로 섞은 '축제의 언어'로 기자를
설득하고, 수동성을 전복시키는 '웃음의 시어'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김기창 화백 미수전에서 자루 걸레에 검은 먹을 묻혀 마구 후려친
웃음의 대 폭주를 봤다"는 그는 "그 웃음을 통해 현실에 대한 응전력,
전복의 재미를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신촌을 향해 걸어나오던 길,
이번 시집에서 '피 흘리며 허공 중에 솟구쳐 매어 달린 젖가슴'이라
표현했던 미국의 상징, '맥도널드'의 M자가 '검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