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재활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마가렛 인게(55·한국명 인진주)씨는 지난 82년 잡지에서 우연히 한국복지재단의 광고를 보고 한국 어린이들에게 돈을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스위스 베른의 인셀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인씨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병원에서 같이 일하던 한국인 간호사들에게 토막토막 한국말도 배웠다.

“한 달에 20스위스프랑으로 한국에 있는 10살짜리 어린이 셋을 도울 수 있다니 말만 들어도 설?어요. 독일지부를 통해서 애들 사진을 받았는데 마치 세 아이의 엄마라도 된 기분이었지요. 저는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저처럼 힘겹게 자라는 걸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인씨는 85년 초까지 꾸준히 돈을 보내면서 4차례나 한국을 드나들며 아이들을 만났다. 그녀는 82년 여름 대구에서 사진으로만 만났던 정아(당시 10세)와 상봉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대구에 있는 정아 집에 갔었어요. 오두막집 단칸방에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방에서 비가 새요. 순간 왈칵 울어버리고 말았어요.”

그래도 인씨는 건강하게 자라는 정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기뻤다고 했다. 정아와의 서신 교환은 계속됐다. 정아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학교에서 1~2등을 했고 경북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뒤 “선생님 같은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85년 2월 인씨는 여행가방 하나를 달랑 들고서 한국에 도착했다. 지금까지의 방문과는 달랐다. 한국의 아이들과 함께 살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이다. 한국복지재단을 방문해 지금까지 모아온 돈을 세 어린이의 학비로 써 달라며 맡겼다.

그런 뒤 그녀는 광주의 고아원, 대구의 장애인 시설, 경기도 용인의 보육원, 서울의 고아원 등을 옮겨가며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계속해왔다. 그녀는 매달 베트남·방글라데시·짐바브웨 등 4개국의 빈민 아동 9명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일도 한다. 그녀는 “후원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고 2만원씩 보내고 가끔 안부편지를 보내는 데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흔히 형편이 나아지면 돕겠다는 말을 해요. 하지만 어려운 이웃이 손길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멀리 스위스에서 ‘돌보는 애들한테 필요한 옷이라도 사주라’는 메시지와 함께 제게 매달 돈을 보내주는 부인이 있어요. 이런 작은 정성이 소중하죠. 한 달에 1만~2만원씩 적은 돈이라도 이웃을 충분히 도울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