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극작가 차범석 예술원 회장이 77세의 나이에 7번째 희곡집을
냈다. '통곡의 땅'(가람기획)이란 제목의 희곡집에 실린 4편중엔
2편이 최근 탈고한 신작이다. 그의 나이 이른바 희수인데, 극작
50년째의 이 원로는 여전히 현역이다. 23일 오전에도 그는 한복
입고 서재에 앉아 누런 원고지에 만년필을 꾹꾹 눌러가며 새
작품을 쓰고 있었다.

"고희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희수를 보내고 보니 그간 벌
여놓은 것들을 이제는 하나씩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남길 것과 버릴 것을 챙기며 이삿짐 싸는 마음으로 희
곡집을 엮었다 "지만,주름진 표정엔 할 일 마친 이의 홀가분함
같은 것은 없었다.한국 연극 반세기를 지켜본 그에게 오늘의
우리 연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물었을 때,뜻밖에도
"어디로 가는지 우려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50여년전,
집 안팎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의 길로 뛰어들어 "기성 연극계의
때묻은 상업주의극에 도전하는 진짜 연극을 해보겠다 "며
두 주먹 불끈 쥐었던 연희대학생 청년은 반백이 되어서도
여전했다. 걱정은 매운 질책으로 이어진다.

"연극 관객 없다고 울상인데,왜 없는가를 겸허하게 반성해야지요.
젊은 후배들 연극중엔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
쓸데없이 꾸며서 사람 놀라게 하려고 하는 설익은 실험이 많아요.
보는 사람이 즐거워야 할텐데 '하는 사람'만 즐거워요. 그러고도
'예술 모르는 너희가 문화적 안목이 없다'며 오만을 떠는데 ….
그래 가지고 손님이 오겠어요?"

이런 생각을 가진 차범석이기에 희곡집에 오늘의 연극에 대한
'발언'이기도 하다.가령 소극장을 염두에 두고 쓴 '그 여자의
작은 행복론'이 그렇다. 한 여인의 마음 속에 관해 낮은 목소리로
말 건네는 이 작품은 '무턱대고 요란스럽게 고함지르고 넋 빼앗는'
연극에 대한 차범석의 대안이다. "해체나 파괴가 아니어도, 가을
바람에 소리없이 지는 낙엽 한 잎에 머물다 간 생각 하나가 때로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법"이란 그의 생각이 작품에 녹아있다.
차범석은 말했다."연극의 시류가 어떻게 변하건 나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연극을 끝까지 붙들고 써내겠다"고 말했다.
"그런 연극은 여전히 필요하며, 이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줄
사람도 반드시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