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월남 이상재 선생의 마지막 활동 무대였다. 1916년
경성YMCA의 총무 자리를 후배 윤치호에게 물려주고 명예총무로
물러나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 운동, 농촌운동, 보이스카우트 운동
등 민족운동을 벌이던 월남은 1924년 9월 조선일보 사장으로 취임했다.
새로 조선일보 경영권을 인수한 민족운동가 신석우가 조선일보의
면모 일신을 위해 민중으로부터 존경받던 월남 선생을 사장으로 모셨던
것이다.

월남은 '취임에 임하여'라는 글을 통해 "우리 사회는 방금 어느
방면으로 보든지 분열과 혼란에 싸여 있다"며 "이 심상치 않은 위기에
임하여 퇴폐된 인심을 만회하고 공동협치의 정신을 진작하려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이 때 안재홍, 이상협, 김동성 등
민족운동가들이 함께 조선일보에 입사함으로써 조선일보는
명실상부하게 민족지로서 쇄신된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

월남은 일흔이 넘은 노구였지만 생의 최후 불꽃을 언론을 위해 태웠다.
1925년 4월 제1차 조선기자대회가 열렸을 때 의장을 맡았으며 조선일보가
중심이 되어 1927년 1월 민족단일전선으로 신간회가 발족하자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그는 또 1927년 3월 29일 세상을 떠나기 불과
나흘 전까지 조선일보 사장으로 재임하며 재정난과 일제의 거듭되는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는 조선일보를 이끌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