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중국: 미국 대선과 중국 언론

▶ 2000/11/15

차이나클럽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선일보 국제면을 편집하고 있는 李範眞기자입니다.

미국 대선 결과가 왔다갔다 하면서 혼선을 빚고 있는 요즘, 중국의 각 언론 매체들도 예외없이 미국 선거관련 기사들을 머릿기사로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눈여겨 살펴볼만한 점은 미국의 '혼선'을 바라보는 중국 언론의 시각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중국 관영 CCTV의 시각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들의 보도와 달리 중국의 언론은 사전에 일정한 가치관을 갖고서 '옳다 혹은 그르다'하는 사실을 미리 결정한 후, 그 기준에 의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중국 미디어의 기사는 스트레에트 보도라기 보다는 논평이나 컬럼 비슷한 성격을 띄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때 매스컴에 자주 등장했던 '法輪功(반국가집단이라 단정) 문제'라든가 '올림픽 관련 보도(애국심 고취 수단으로 이용)' 같은 경우가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은 스트레이트 보도에 있어서는 중국 매체들도 사실 위주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변화를 느낄 수 있기도 합니다.

CCTV의 관련 기사는 우선 제목부터 튑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세계를 웃기다(美國總統大選: 開了世界一個玩笑)' 이지요. CCTV가 이 사태를 상당히 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수 있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시각 이면에는 '최강국이라 잘난척하는 미국도 별 볼일 없지 않느냐'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자만심과, 미국에 대해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한참 뒤처진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열등감, 그리고 21세기 세계역사의 주인공은 자기들이라는 경쟁심이 묘하게 뒤섞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미국 관련 기사를 다룰 때엔 기본적으로 체제간의 대결이라는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군요. CCTV의 보도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신문에 소개된 미국 대선관련 기사와 비교해 보시면 그 차이점을 보다 명확하게 느낄 수 있으실 것입니다.

◆ 미국 대통령 선거: 세계를 웃기다 (11월 9일, CCTV)

"이번에 치러졌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유사 이래 최대의 혼란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세계를 한바탕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해외 언론보도를 종합해 볼 때, 우열을 가늠할 수 없이(難分難解) 팽팽한 대결을 벌였던 부시와 고어가 끝까지 투쟁해 얻어낸 결과는 다시 한번 각자가 얻어낸 표의 수를 헤아려 보는 것 뿐이다. 새로운 변화라고는, 힘들여 길을 가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오게 된(峰回路轉) 것 밖에 없다.

이러한 일은 최근 40년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공화당 후보인 부시가 선거의 관건이었던 플로리다에서 승리를 차지했다고 현지 방송사들이 보도하자마자, 플로리다주 선관위는 재검표의 실시가 불가피하다고 선언해 버렸다. 부시가 얻었던 환희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고, 낙선했다고 여겼던 민주당 후보 고어는 부시에게 보냈던 축하 메세지를 취소하고 패배를 부인하는 소동을 벌였다. 독일, 러시아,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들도 앞다퉈 보냈던 축전을 취소했다.

밤새워 진행됐던 개표작업이 거의 끝났던 시각은 북경 시각으로 수요일 오후 3시 18분이었다. 이 시각에 부시의 동생이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주에서 부시의 승리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고어는 이미 부시에게 축전을 띄운 상태였지만, 한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보냈던 축하를 취소하고 패배를 부인해 버렸다. 부시 측 선거위원장은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축하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부시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대신 '재검표가 모두 끝나고 나면 부시의 승리가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고어 측 선거위원장인 윌리엄 데일리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을 향해 '아직 선거는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데일리는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 이렇게 긴 밤은 맞아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시와 고어 두사람은 모두 아직까지 공개성명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플로리다주 선거법은 두 후보 간 득표율이 0.5% 미만이면서, 뒤처진 후보가 재검표 실시를 거부하지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재검표가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선거관원은 성명을 발표하고 재검표 작업은 현지시각으로 2000년 11월 9일 목요일 출근시간쯤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습니까? 재미있게 읽으셨습니까? 우리식 보도와의 차이점이 느껴지시는지요? 비교를 보다 더 명확하게 해 드리기 위해 우리나라의 신문보도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위 CCTV와 같은 날 소개됐던 조선일보 11월 9일자 기사입니다.

"43대 대통령을 뽑는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가 승부의 관건인 플로리다주의 재검표 결정으로 당선자 발표가 연기됐다. 1차 잠정집계 결과 공화당의 조지 W 부시(54) 후보가 선거인단 271명을 확보해 과반수인 27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민주당의 앨 고어(52) 후보 진영이 선거인단 25명을 보유한 플로리다주의 개표결과에 불복, 재검표가 결정됨에 따라 공식발표가 미루어졌다. 플로리다주 당국은 8일 아침 재검표에 돌입했으며 최종 결과는 이르면 이날 오후 4~5시(한국시각 9일 오전 6~7시) 드러난다.

그러나 클레이 로버츠 플로리다주 선거감독관은 국외 부재자 투표가 2300여표나 돼 승패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일인 7일자 우체국 소인이 찍힌 투표는 모두 유효하지만 이들 부재자 투표가 우편으로 도착하려면 10일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검표 결과도 양자가 각축을 벌일 경우 부재자투표 개표가 모두 끝날 때까지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 진영 모두 사실은 아주 근소하나마 부시의 승리를 인정하고 있다고 AP는 보도했다.

7일 저녁(미국시각) 50개 주별로 마감된 유권자 투표결과 공화당의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고어 후보가 각각 선거인수에서 246대249를 얻은 상황에서 CNN 등 대부분의 미 방송들이 부시의 플로리다주(선거인단 25명) 승리를 예측, 부시의 당선을 성급히 알렸다. 그러나 부시측에 축하전화까지 했던 고어측은 플로리다주의 표차가 두 후보 간 수백표에 그친 점을 발견, 패배 시인 연설 계획을 취소하고 플로리다 선거당국에 재검표를 요청했다. 미 방송들은 플로리다주에서 일부 부재자 투표를 제외한 개표 마감 상황에서 부시와 고어의 차이가 1000여표(AP 1655, CNN 1785)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날 전국 투표에서는 개표가 완료된 상태에서 고어가 290만9135표, 부시가 290만7351표를 각각 획득했다. 이에 따라 부시가 플로리다에서 승리할 경우 부시는 112년 만에 '소수파대통령(minority president·전국투표에서는 지고 선거인단에선 이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투표율은 50% 안팎으로 추정됐다."

이제 좀 더 확실하게 비교하셨을 것입니다. 눈에 띄는 중요한 차이중 하나는 우리는 나중에 벌어진 사건을 기사 앞부분에 쓰는 반면, 중국은 사건 전체를 보는 시각이나 논점을 앞에 둔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보도 방식은 영국이나 미국같은 서양의 매체들이, 먼저 발생한 사건을 앞부분에 기술하는 시간발생순 기사체를 선호한다는 사실과도 비교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대표격인 미국을 낮춰 보려는 시도는 비단 중국만의 것은 아닙니다. 과거 냉전구도 아래서 자본주의 국가들과 적대관계를 가져왔던 나라들은 대부분 그러한 보도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힘을 잃고 비실거리긴 하지만 한 때 나마 사회주의 국가들의 대장 격이었던 러시아도 예외는 아닙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같은 날인 11월 9일자 러시아 신문들은 미국 대선 관련 소식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제가 러시아어를 하지 못하는 관계로, AP통신이 전한 신문 제목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합니다.

"대통령이 둘이라니? (Two Presidents?)"
"두 후보 모두 좋다. (Both Candidates are good)"
"미국은 아직도 대통령을 뽑을 능력이 없다. (America is still unable to elect the president)"

좋은 하루 맞이하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李範眞드림 bomb@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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