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중에서)
어느 해 하남하는 기차에서 모악산으로 떠난 젊은 시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뒤 수없이 철길 위로 꽃이 흩날리고 눈이 내렸지만
산으로 떠난 시인이 그 산문을 걸어내려 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스스로 몸을 숨겨버린 옛 갈건야복의 유자들 이야기는 많습니다.
그러나 모악산 자락으로 몸을 숨긴 우리의 시인은 노수가 아닌 홍안의
청년이었습니다. 산의 교교한 어둠 속에 독거하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푸르른 나이였습니다. 더구나 가 아닌 홀로 였습니다.
그는 옛 은자가 환생한 둣 그렇게 휘적휘적 산으로 가버렸습니다.
가끔씩 만난 적도 없는 시인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시인의 하산 여부를 궁금해했던 것은 저잣거리의 떠들썩함과 달콤하고
후끈한 살냄새와 문학꾼들의 도도한 주흥 같은 것도 없이 과연 이
젊은 시인이 홀로 산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따위의
천박한 관심에서였음을 고백합니다.
어쨌든 산으로 떠난 시인은 혼자서 달을 보고 혼자서 별을 헤며
혼자서 글을 쓰고… 그렇게 작은 황토집에서 재가승 같은 10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모악산방의 삶을 시와 산문으로 묶어
펴냈습니다. 내가 읽어 본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라는 책에 그려진
그의 삶은 더 작고 더 가벼울 수도 없으리 만치 단촐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글에서는 모악산의 풀 냄새가 났습니다. 언어 세공의 노력 같은
것도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조미료 안 넣은 산나물 무침 같은 맛이
있었습니다.
전주 젊은 시인들의 장형 격인 김용택님의 안내로 모악산 시인의
집에 당도했을 때에는 산그늘이 길게 내릴 무렵이었습니다. 선사
같은 모습의 시인이 지팡이라도 들고 문 앞에 나와있을 것을
기대했지만 시인은 부재중이었습니다. 김시인이 "저것이 남준이
새끼들"이라고 부른 마당 앞 계곡 애기 수련 아래 떠도는 얼음치 몇
마리와 십여 그루나 되는 늙은 감나무의 열매들만이 시인의 부재를
더욱 선명히 해주었습니다. 문득 "당신을 사랑하는 일처럼 세상에
가혹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그의 글이 떠올랐습니다. 혹 그는
사랑의 깊은 상처를 입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산가를
내려왔습니다.
박 시인을 만난 것은 그날 밤 전북일보 문화부의 김은정 부장이
마련한 저녁 식사자리에서였습니다. 우아동의 격조 높은 한식집
문이 슬몃 열리면서 얼굴 선이 가냘프고 정적인 분위기의
사내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산 이슬만 먹고 사는 것처럼 가벼워
보이는 한복 차림의 그가 사뿐 들어왔을 때 나는 처음에 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바람처럼 들어온 그는 말없이 미당 시에 나오는
재가 된 신부 모양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나는 어떻게 해서
산으로 떠나게 되었는가 따위의 벼르고 있던 질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인은 세상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추함도, 정의로움 뿐
아니라 불의함도, 기쁨만 아니라 슬픔도, 밝음 뿐 아니라 어두움도
그리고 어지러움과 상처마저도 함께 끌어안고 가야하는 것 아닌가
따위의 상투적인 질문 같은 것은 하나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대신
그의 몸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모악산 산음의 깊고 어두운 향기
같은 것을 맡고 있었습니다. 비로소 김용택 시인이 "남준이를 한
번씩 만나고 와야 영혼의 때가 씻겨 나간다"고 했던 말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얼핏 연약해 보이는 식물형의 모습 저 편에서는 언뜻 귀신도
도망가게 할 정도의 강단(실제 그가 사는 집은 무당이 버리고 간
집이고 한동안 밤이면 귀신에 시달렸다는 얘기도 들립니다)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해맑은 모습 뒤에 숨겨진 진한
고독의 빛도 보였습니다. 시인의 시보다 시인 그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미안한 일이기는 하지만 도시에서 하도 목소리 큰
시인들을 많이 보아왔던 나는 그 스스로가 바로 시인 것처럼 느껴지는
젊은 시인 쪽으로 경도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나의 그런
문학 소녀적 관심이 부담스러웠던지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흔들림
없는 무슨 큰스님 바라보듯 할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며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웃었습니다.
속속 도시를 떠나는 예술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산이나 바람이나 달빛을 노래하는 목가적 예술가들이 간단없이
쫓겨나거나 내몰리는 시대에 이른 것 같습니다. 시와 같이 읽고
음미하는, 기다려야 하는 문학을 견디지 못하는 시대에 이른 것입니다.
밤늦어 을 나와 작별을 할 때 어두운 산길을 염려했더니
시인은 예의 그 해맑은 미소로 달빛이 밝혀 주어 괜찮다며 웃었습니다.
그 웃음에 쓸쓸함이 묻어있었습니다. 어느덧 그에게는 사람보다 달빛과
버둘치가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버린 듯 했습니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렇더라도 나는 우리의 시인이 하늘로 가는 사다리 같은
그 산길을 되짚어 언젠가 다시 도회의 불빛 속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처럼 아름다운 감성의 시인들이 떠나가 버린 도시란 너무도
쓸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떠나갔던 시인들이 하나 둘 다시 돌아오는
살 만한 세상, 꽃들이 일제히 터지는 것 같은 그런 세상은 언제쯤
열리는 것일까요. (서울대 미대 교수·화가)
▶박남준 (1957∼ )
1984년 시 전문지 지를 통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1990), 『풀여치의 노래』(1992),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1995),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2000)등과, 산문집 『쓸쓸한 날의 여행』(1993),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1998)등을 펴냈다. 10여 년 가까이 홀로 전주
모악산에 들어가 살며 글을 써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