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청년과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가던 어머니가 싸우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너도
엄마 말 듣지 않으면 저렇게 병신이 돼' 하는 말에 청년이 분개하여
발단된 싸움이었다. 장애인을 죄의 값, 어떤 잘못된 삶의 결과로 보고
편견과 차별을 일삼는 행위는 그 후에도 한국 사회 여기저기서 많이 보게
되었다. 소아마비 장애인이 대학 입학거부를 당해 눈물 흘리는 모습도
보았고, 특수학교와 장애인복지시설 건축을 반대하는 데모행렬을 만난
적도 있다.
물론 지금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개선되었고 심지어 1995년
이후에는 대학에 중증장애인 특례입학제도가 생겨 우리 나사렛대학교만
해도 40명의 장애학생이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기에 태도의 장벽, 의사소통의 장벽,
건축물의 장애 장벽이 여전히 심각하다. 수화통역사가 없는 학교에
입학한 청각장애학생에게 장애의 벽은 변함없이 높고, 계단밖에 없는
강의실에 휠체어를 탄 학생이 올라가는 것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흔히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미국정부의 정책의지,
시민들의 인식, 그리고 장애인 가족과 장애인 당사자의 극복 의지가 한
데 뭉친 결과이다.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었다.
1990년 7월 26일 당시 부시 대통령이 세계장애인이 부러워하는
미국장애인법(ADA :American with Disability Act)에 서명을 할 때, 두
팔이 없는 해롤드 윌키가 발가락 사이에 끼워서 주는 펜을 받아 사인을
했다. 장애인의 권리와 고용 그리고 사회참여 보장이 주된 내용인 이
법을 비장애인인 대통령이 전 국민을 대표해서 지킨다는 것을 담보하는
의식이었다. 미국 장애인의 질 높은 삶은 헤롤드 윌키 같은
장애인지도자가 앞서서 행동지침 등 장애장벽제거운동을 전개하고 언론이
적극 홍보하면서 참여해 법·제도를 만들어낸 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명 William Harold Patchㆍ나사렛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