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 지구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질러 이스라엘
군이 경비한다. 아버지와 함께 시위대에 섞여있던 알 뒤라 소년이
이스라엘 병사의 총에 맞아 숨지는 모습이 방영돼 세계에 충격을 준 곳도
이 부근이다. 29일 이스라엘 군이 외곽 경비를 서지는 않았지만 부서진
초소에 이스라엘 국기가 꽂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안에서는 분명히
병사들이 가슴을 졸이
며 바깥 동태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중앙부를 지나 10분쯤 차를 타고 가면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하나인
마가지 캠프가 나온다. 이날 오후 4시쯤 마가지 캠프의 아흐마드(28)
집에서 이곳 이슬람대 동창생들인 라미, 야세르-나세르, 알라, 마르완 등
5명이 모여 설탕을 가득 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당연히
인티파타(민중봉기)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먼저 집 주인격인 아흐마드가 입을 열었다. 『지금 가자는 완전히
봉쇄됐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우리에게
경제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자 라미가 거들었다.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가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여기는 식량도 바닥이 났다.
아이들이 걱정이다.』
20대 후반인 이들에게는 정치문제보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더 걱정인
듯 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한 이들의 공통점은 2가지. 모두가 아직
결혼을 못했으며 돈을 못 번다는 점이다.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는
지참금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난이 흐르는 난민촌이라지만 남자가
결혼하려면 1만 달러 가량의 지참금이 필요하다고 아흐마드는 설명했다.
또 부인을 구해 가정을 꾸리려면 단칸방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월세가
최하 200달러나 된다. 집 한 채 사는 데는 2만5000달러는 있어야 한다.
그러니 팔레스타인 청년들 중에 장가갈 꿈도 못 꾸는 총각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래도 『돈 있는 영감들이 2~3명의 아내를 둘 수 있어
처녀들이 시집 못가는 경우는 없으니 다행』이라며 마르완은 헤벌쭉
웃는다.
대학졸업자들인 이들 5명 중 아흐마드와 마르완은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알라는 이스라엘군 검문소 근처의 옷공장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문을 닫아서 돈을 벌지 못한다. 라미와 야세르-나세르는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니까 무직은 면했지만 무료봉사다. 돈이 없으니
부모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아흐마드의 형제는 10남 3녀. 아흐마드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사우디아라비아로 나가 취업했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부쳐주는 돈으로 살아간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내에는 산업이라는 것이 없다. 자치정부에서
고용한 경찰이나 교사들만 빼고는 다 실업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돈을
벌려면 아흐마드도 아버지처럼 인근 아랍국으로 가야하지만 어디나
실업자들이 넘친다. 산유국들은 91년 걸프전에서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이 이라크 편을 든 다음부터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받지 않는다.
이스라엘에서 일할 수 있는 신분카드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아흐마드나 그 친구들은 모여서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자신들의
장래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헤어지곤 한다.
라미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절망적인 상태가 최종단계에 와 있다』고
판단한다. 자기도 친구들도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난민촌에 갇혀 지내는
일을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것. 게다가 이스라엘 정부가
후원하는 유태인 정착촌이 벌써 가자지구의 40%나 차지했다. 이러다가는
갈 데 없는 신세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결국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하고 나중에 키울 자식들에게 이러한
절망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나라를 건설하는 것 이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것이 이들이 늘 내리는 결론이다.
『인티파타는 단순한 「봉기(uprising)」가 아닌 절망의
「폭발(explosion)」』이라며 앞으로 훨씬 큰 규모의 인티파타가 있을
것이라는 마르완의 단언에 이날 모인 동창생들은 모두 동의했다.
(마가지캠프(가자지구)=우태영기자 tywo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