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서정주에 대해 더 할 수 있는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에 대해 덜 한 말이 남아 있는 것일까. 지난 세기 동안 그의
이름은 한 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기를 넘어 사실상 한국시와
동의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시에 바쳐진 무수한 헌사와 감동의 언어를
상기해보라. 누가 뭐라해도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시를 쓰는 이들에겐
막강한 정부였고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겐 둘도 없는
정부였다.
그러나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그의 근황에 대한 보도에는 단순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원로 예술가에 대한 예우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
뭐라고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정서적 자력(자력)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부인과 사별한 후 그가 어쩌면 모국어의 산지인
이 땅을 영원히 떠날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그 자체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시와 일상이 박제화된
문학사적 유물이 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서정주, 그는
아직도 현재형의 시인이며 한국시는 본격적인 '서정주 이후'의 시대를
개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의 정황이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소설에서의 이광수와 더불어 시에서의 서정주는 20세기 한국문학의
'영광이자 상처'이다. 그들이 한 개인으로서 내비친 여러 인간적
약점과 실수들은 그들의 문학적 성과에 적잖은 그림자를 드리운 바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작품을 통해 살아 남았으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멸을 약속받고 있다. 문학 이전이나 이후의 영역에서
서정주를 비판하기란 쉽다. 하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비판이라면 그것은
서정주의 시를 과녁의 중심에 놓는 비판이 되어야 할 것이며, 서정주의
시적 성과에 대한 응분의 인정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비판이어야 할
것이다.
서정주의 시는 그 이전의 한국시에 대한 반란으로부터 출발해서
한국시의 새로운 틀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고 그리하여 그것에 도전하는
새롭고 다양한 반란세력의 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화사집'에서
선보인 질풍노도의 언어와 상상력은 우리 시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개척의 신대륙을 열었으며, '귀촉도'에서 '서정주시선'과
'신라초'를 거쳐 '동천'에 이르는 유현한 동양정신의 탐색은
한국어가 창출할 수 있는 희열의 최대치를 경험케 했고, 이어지는
'질마재 신화'나 '떠돌이의 시'의 시편들 또한 그의 언어가 가 닿는
모든 사물이나 경험을 시로 변환시키는 놀라운 연금술을 과시했다. 어느
정도 문학적 평가가 유보적일 수밖에 없는 '기행시'나
'산시'의 경우에서도 시인의 자연적 연령과 상관없이 여전한
녹슬지 않은 언어 감각과 활달한 상상력을 맛보는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서정주라는 산맥이 거느린 다채로운 시의
봉우리와 골짜기들은 명실공히 '시의 승리'라는 말로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는 일대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라는 도저한 고백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시는 고상함과 비속함, 진지함과 익살맞음, 혼돈과 질서, 이
대립적인 영역의 경계선을 횡단하며 그때마다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전도하는 카니발적 세계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바깥이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안이 바깥으로 밀려나가는 시공간의
착종현상을 종종 경험하게 되는데 이 역시 일상적 대립과 분리가 무화된
초월적 세계에 대한 희구이자 차원돌파의 의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가득찬 전통적인 민간전승의 요소 또한 단순히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풍물의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상상 속에서 세계를 다시 주조해내고자 하는 창조적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모험의 언어가 곧 언어의
모험이 되어버린, 우리 시의 희귀한 예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대학 시절 시창작 시간.
강의실 옆 복도 창가에 서 있으면 저 아래 멀리서 서정주 시인이 파란
와이셔츠에 베레모를 쓴 멋쟁이 차림으로 단장을 짚고 느릿느릿 분수대
옆을 지나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의
복학생이 내뱉듯이 말했다. 저 전라도 문딩이! 그 말은, 표현의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그 시인에게 바치는 최고의 애정의 표시였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진우·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