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정숙자(가명·53)씨는 쉰 살이 되면서부터 별다른 병이 없는데도
불면증과 우울증, 소화불량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택시를 몰던
남편이 그 무렵 교통사고를 당해 수입이 끊어지면서 닥친 어려움 탓에
생긴 스트레스려니 했지만, 남편이 건강을 되찾고 집안 사정이 안정된
뒤에도 증상은 점점 심해졌다.
정씨의 증상은 폐경기에 들어서면서 생긴 갱년기 장애가 원인이었으나,
정신과를 찾아 정확한 진단을 받을 때까지 일년간은 그것 때문이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생리는 규칙적이었고 잦지는 않지만 부부관계도
정상적으로 가졌기 때문이다.
민간요법과 건강식품을 찾아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증상은 계속
악화됐다. 하루에 한두 시간도 못 잘 정도로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가슴이 늘 벌렁거렸다. 식욕부진으로 식사를 못해 체중이 5㎏나 줄었다.
집안 일을 못할 정도로 손발이 떨렸다. 자신이 남편과 자녀에게 아무
도움되지 않는다는 무력감에 혼자 울기도 했다.
『곁에 누가 없으면 죽을 것 같고, 집이 무너질까봐 무서워 덜덜
떨기도 했어요.』
그는 아예 바깥 세상과 담을 쌓게 될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 2년 전,
『정신 질환인가보다』고 걱정하는 가족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았다.
분당차병원 정신과 서신영 교수는 『폐경기가 가까와지면 흔히 나타나는
갱년기 우울증이 심해진 상태』라며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생활에 자신감을 가지면 회복된다』고 진단했다.
정씨는 항우울제와 여성호르몬제 등을 처방받아 복용하면서 생활
습관을 바꿨다. 밤에 쉽게 잠들기 위해 낮에 몸을 피곤하게 하려고
등산을 시작했고, 매일 30분씩 러닝머신 위에서 뛰었다. 불안감이
심해지면서 하루 서너 잔씩 마시던 커피도 끊었다.
그리고 맞벌이하는 이웃집 젊은 부부의 아기를 돌봐주는 일도
시작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아기와 놀아주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밤늦게야 귀가하던 남편과 자녀들도 되도록 일찍 돌아와 TV를 함께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중년 여성의 갱년기 장애에는
가족의 관심과 애정이 가장 좋은 「치료약」이라고 서 교수는 말했다.
정씨는 요즘 두 달째 약을 끊고 지내지만, 예전같은 증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나이가 먹어 여성의 기능은 잃었지만, 식구들 뒷바라지만
하던 인생에서 벗어나 새 사람으로 사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