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교과서'가 새로 등장한 것과 동시에 기존 교과서는 대폭
과거로 후퇴했다. 현재 중학교에서 사용되는 7종의 기존 역사
교과서(97년판)는 문부성에 제출된 검정 신청본에서 일본의 전쟁범죄와
가해 기술을 대폭 축소·삭제하는 등 개악 경향이 뚜렷했다.

◆종군위안부=현행 교과서엔 모두 기술돼 있지만 검정 신청본에선
4종(학교 현장의 점유율 80% 가량)이 완전삭제하고 3종만 언급하고
있다. 관련 기술이 남아있는 3종도 내용이 축소되거나 일본군의 가해
사실이 가려지도록 표현이 완화됐다. '도쿄서적' 출판사의 현행
교과서엔 "종군위안부로 강제적으로 전쟁터에 송출된 젊은 여성도
다수 있었다"고 기재돼 있지만 검정 신청본에선 완전히 삭제됐다.
'오사카서적'도 "조선 등의 젊은 여성들이 위안부로서 전쟁터에
연행됐다" "강제적으로 징병당한 병사와 종군위안부의 개인보상"
등의 기술을 뺐다. '시미즈서원'은 "조선과 타이완 등의 여성
중에는 전쟁터의 위안시설에서 일하는 여성도 있었다"는 현행
기술을 "비인도적 위안시설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조선·타이완
등의 여성도 있었다"로 고쳤다. '교육출판'은 "많은 조선인
여성 등도 종군위안부로서 전쟁터에 송출됐다"는 부분 중
'종군위안부로서'란 대목을 삭제했다. '데이코쿠서원'은
"(조선 등의) 지역 출신자 중엔 종군위안부였던 사람들이 있다"는
기술을 빼고 "전쟁 중 위안시설에 보내졌던 사람들"로 바꿨다. 또
현행 2개 교과서에 종군위안부 피해여성의 시위 사진이 게재돼 있는
것도 새 교과서에선 다 삭제됐다.

◆조선 합병과 항일운동=대부분 교과서가 3·1운동과 의병 봉기
같은 조선의 저항에 관한 내용을 축소하고 조선 의병 사진 등도
삭제했다. '도쿄서적'은 "조선의 독립을 이루려는 운동이
이어졌다. 항일 조직이 다수 만들어지고 만주 등에서 게릴라부대를
조직하는 등 해외에서도 싸움을 계속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현행 기술이 새 교과서에선 삭제됐다. '오사카서적'은
"3·1독립운동 때 일본정부는 헌병·경찰뿐 아니라 군대까지
동원해 진압했고, 조선 민중은 8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는
부분이 "일본정부는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진압했다"로 축소됐다.
'시미즈서원'은 "일본의 통치에 대해 각지에서 저항하는
무장봉기가 이어졌다. 일본은 군대를 파견해 이를 억누르고 식민지
지배를 권유했다"는 기술을 뺐다.

◆아시아 침략=대부분 교과서가 제목 등에서 침략이란 용어를
삭제하거나 '진출' '지배' 등으로 바꿨다. '도쿄서적'은
"일본의 침략에 대해 조선인은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대목을
삭제했다. '교육출판' 등의 대부분 교과서도 제목에서 '침략'이란
용어를 뺐다. '오사카서적'은 "일본은 조선침략을 더욱 강화했다"
"355만명의 일본병사가 침략전쟁을 위해 해외에 출병했다"는 대목을
삭제했다. 또 제목에서 '중국침략'은 '분할되는 중국'으로,
'중국의 전면침략'은 '일·중전쟁 확대'로 수정했다.

◆난징(남경)대학살=4종 중 2종이 '대학살' 대신 '사건'이란
표현으로 바꿨다. 희생자수가 "20만~30만명"이라고 명시한 교과서는
6종에서 2종으로 줄었다.

◆관동 대지진=2개 교과서가 제목에 '조선인 학살'을 명시했던
것을 삭제했다.

(동경=박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