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은 우리가 돈을 들여 평화를 사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자면 우리쪽 경제가 견실해야 한다. 그것이 흔들려
돈을 제대로 못대면 남쪽도 북쪽도 「남·북」을 추진할 능력과
인센티브를 잃게 된다. 양쪽이 다같이 거덜 난 상태에서 추진하는
「남·북」은 또 하나의 거대한 재앙만을 불러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경제위기를 일단 극복했다는 전제하에서
『그렇다면 이제부턴 「남·북」이다』하고 그일에 착수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바로 그 경제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딛고 서 있는 「남·북」의 기반은
대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우리 살림이 찌그러지는데도 「남·북」을
위한 돈은 어디선가 계속 나온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집권 측은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분명한 설명을 해줘야 할 터인데 도무지
그런 것이 없다.

경제위기론이 다소 과장된 호들갑이라는 관측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태평스러운 낙관론만 믿고 살 수도 없다. 「지방경제
붕괴」 「가정경제 추락」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증시·벤처 폭락 운운도 마냥 엄살만은 아닌
모양이다. 정부정책의 신뢰성, 기업·금융 구조조정에 대한
국내외 시장의 짙은 불신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저런
빚투성이 기업, 저런 방만한 경영, 저런 미덥지 않은 정책의지,
저런 취약한 은행, 저런 경직된 관료, 저런 불안한 투자환경
가지고선 도저히 돈을 풀 엄두를 못 내겠다는 것이다. 아니,
투자했던 돈까지 부랴부랴 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당신네 형편에서 앞으로 무슨 능력으로 100가지
대북사업을 다 펼치겠다는 것이냐?』는 것이 외국투자자들의
의혹이다.

국내적으로도 통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1000명 중 59%가 현재의
「남·북」을 「과속」이라 답했다고 한다. 하기야 50년간의
분단비극을 돌아본다면 지금의 「남·북」은 「지각」일지언정
「과속」은 아니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여론이 우려하는
것은 우리의 휘청거리는 살림에 비해서 지금의 「의욕」이 너무
크고 버겁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런 내외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김 대통령은 이제는 다시 차분한
숨고르기로 돌아섰으면 한다. 「남·북」의 지금까지의 성과는
그것대로 착실하게 실무적으로 진행시키되, 앞으로 당분간은
「남·북」의 밑거름인 경제쪽에 다시 전심전력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동안 김 대통령은 외국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일본에 가서도,
상암동 축구경기장에 가서도 「기회만 있다 하면」 온통 희망적인
「남·북」 발언으로 나라 분위기를 한껏 획일화시켰고 부풀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니까 집권당, 관료, 언론, 지식인, 시민들도
덩달아 「통일, 통일」 하며 전략성 이전의 감격과 「무드」에
심취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50년 만의 당연한
흥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북쪽의 「위원장」이나 지도층은 남쪽을
향한 「무드 조성」에는 한껏 기분파적으로 나왔지만 자체
내부적으로는 추호의 들썩거림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가
「위원장」 자신이 「기회만 있다 하면」 장밋빛 「남·북」
청사진을 말하는 일도 전혀 없다. 그만큼 북쪽은 「무드」 아닌
투철한 전략성에 의거해서 「남·북」의 보폭과 속도를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그점에서만은 북쪽의 관리능력과 게임능력이
남쪽의 그것보다 단연코 수십 수 위다. 김 대통령은 그래서
「2003년 이전에 웬만한 걸 다 내가…』 하는, 알 수 없는 마감시간
의식과 조급증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남·북」을 저 하늘의 북극성 아닌 「지금, 이곳」의 냉엄한
좌표에 놓고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래야만 「남·북」의
절대적인 가능조건인 경제도 추스를 수 있을 것이다.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