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소설들은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고 싶어한다" ##
## 소설 쓰며 삶의 이면과 진실 많이 깨달아 ##
예전만 못해도 일간지 신춘문예는 여전히 모든 문학 지망생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최고의 작가 등용문이다. 신년 벽두를 장식하며
당선의 영광을 누린 그 패기만만한 처녀작이, 그러나 당사자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는 예가 제일 많은 경우 또한 신춘 문예다.
오죽하면 한 저명한 평론가가 이란 표현까지 썼겠는가.
하성란(33)씨는 지난 96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문단 데뷔에 성공했는데 당선작 「풀」을 포함, 소설 8편을 수록한
첫 창작집 「루빈의 술잔」을 놀랍게도 그 이듬해 말에 선보인다.
작품의 질이 담보된 이 치열한 생산성을 두고 평론가 김윤식은
라며 능히 짐작
가능한 오랜 수련 기간에 대해 지적했고, 하씨는 이러한 추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등단 3년만인 지난해 「곰팡이꽃」으로 제30회
동인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심사위원의 한명이었던 소설가 이청준은
며 매우 '각별'한
평을 했었다.
●상투적 줄거리나 표현은 사절
"작위적인 냄새가 나는 글, 상투적인 줄거리나 표현 등을 가장
싫어합니다. 능력 닫는 한 그런 건 적극 피하려고 하지요. 작가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앞서가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앞질러도 또다른
상투성에 빠지는 것 같아요." (이와 관련 그는 최근 작품집인
「옆집 여자」 작가의 말에서 고 썼다)
하씨가 선택한 방법은 관찰자 시점에서의 대상에 대한 철저한
세밀 묘사다. 이른바 '마이크로 묘사'로 명명된 그의 방식은
처럼 보일 정도로 아주
미시적이면서 동시에 냉정하다(따로 인용한 글을 보시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다룰 때에도 결코 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서술하려 들지 않는다. 단지 그 주인공의 행동, 인물 주변의 사물
등을 묘사할 뿐이다.
가령 「루빈의 술잔」에서 '여자'는 백화점 붕괴 사건으로
실종된 남편의 짐을 챙기러 직장인 출판사에 들른다.
그 서랍에서 여자는 등을 발견한 뒤
어느 곳에도 실종된 남편에 대한 회한이나 안타까움이 '서술'되고
있지 않다. 감정의 토로는 더더욱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유품 목록과, 그것을 트렁크에 애써 눌러 담는 아내의 모습과, 아무
관심도 없는 사무실 타인들의 묘사를 통해 이를 읽는 독자는 여자의
비통을 더 절실히 전달 받는다. 되는 것이다.
"사물들이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이라 고집하는 거지만 주인공이 직접 얘기하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것 같긴 해요. 학창 시절(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시를 가르쳐 주신 오규원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라 표현하시데요." 70년대 이후 황동규,
정현종과 함께「문학과지성」그룹의 간판 시인으로 활동해 온,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의
작가 오규원은 선가에서 사용하는 이 개념을 끌어와 창작에
적용했다. 모든 개체와 사물 각각이 전부 도로서, 있은 그대로
현상 그 자체가 의미요 진리라는 뜻이라 한다. 김윤식이 하씨의
작품 세계에 대해 라고까지 진술한 것도
이런 면에서 일리가 있는 셈이다.
"저 자신으로서는 제 문장이 더욱 건조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고교 시절 한창 소설 읽을 때에도 솔제니친이나 존 스타인벡이
와 닿더라구요. 헤밍웨이의 하드보일드(hard-boiled)한 문체는
너무너무 좋아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긴 하씨가 주로
다루는 잿빛 가득한 도회지 사람들의 소소하고 와전한 삶을
그려내는 덴 그만한 방식도 드물 것이다.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은 전혀 등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직업적으로도 프리랜서가 드물고 이른바
'(지식인)룸펜'도 없구요.
●하드보일드 문체에 매료
"일부러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그런 주인공을 내세우면
왠지 이미지만으로도 손쉽게 따고 들어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도 제 소설엔 음악 얘기나 무슨 현학적인 대화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인물들은 고된 노동과 잡무에 시달리는
일상인들보다 아무래도 좀 덜 고뇌하지 않나요? 실제보다 더
엄살을 떨고…." (그는 장편 「식사의 즐거움」 작가의 말을
라는
문장으로 끝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소설엔 도식화된 권태나 절망도, 다분히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연민 같은 것도 없다. 이러한, 오래 단련된
엄격함으로 글을 써온 까닭에 그는 단편의 경우 원고지 90장이든
110장이든 원래 작정한 분량을 거의 정확히 맞추게 된다고 한다.
"쓰다보니 길어졌다는 식으로 말하는 작가들이 적지 않은데 저는
경험적으로 잘 이해를 못해요. 물론 소설이란 게 본래 의도하지
않았던 '의미의 확산'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걸 알지만 저는
작품을 항상 제 통제하에 두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쓴 만큼, 딱
그 만큼으로 만족하지 덤을 원하진 않아요." 다시 작가의 말.
-거두절미하고, 왜 소설을 씁니까? 말을 약간 바꾸면 누구를
위해서 소설을 쓴다고 생각합니까?
"(잠시 상념에 잠긴 후) 저 자신을 위해서 쓴다고 봐야겠지요.
글을 쓰면서 자기 탐색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가가 된 후 저 많이 사람됐거든요(웃음).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냈을 많은 삶의 이면과 진실들을 깨달아 가는 듯합니다."
덧붙여 하씨는 "사실 할 얘기는 아니지만~"이라는 허두와
함께 "선배님들이 들으면 꾸중하실 테지만, 이제 5년차 밖에
안됐는데(웃음) 소설 쓰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어요.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요?"라며 기자에게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글이지만 시한에 쫓겨 원고를 메꿔야하는
괴로움을 꽤 알고 있는 기자는 이미 대답이 정해져 있는 작가의
그 물음에 기자직군의 전통적(?) 방식으로 대응하는 외에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 잔 하시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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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ㆍ이명원
하성란씨가 자신을 찾은 경희대 국문과 학생들과 함께 작품 세계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들은 작가와 술자리까지 갖고 싶어 했으나 그 즐거움은 기자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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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꽃 인용문)
지난주에 소박스로 이미 처리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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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있는 소박스 하나는 곧 출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