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 1-2
막스 폰 뵌 지음
이재원-천미수 옮김, 한길아트.
"만약 내가 100년 후에 다시 태어나서 그동안 세상일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알고 싶으면, 나는 책방에 가서 패션책을 한 권 사서
볼 것이다."
지난 시절 미시건 주립대학교 조앤 아이커교수의 첫 강의 시간에
들었던 말인데, 「패션의 역사」를 읽고 나니까 그때 그 말이
새롭게 떠오른다.
패션이란 것이 원래 그것이 태어난 곳의 자연환경, 정치체제,
사회제도, 경제상태, 종교관념, 예술양식, 가치관념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기호로서의 패션에 대해 역사와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그
해석의 지평을 넓힌 연구서가「패션의 역사」(1·2)이다. 이 책은
독일의 저명한 문화사가이자 비평가인 막스 폰 뵌(Max von Boehn)의
저서 Die Mode 전 8권을 두 권의 요약판으로 낸 것을 옮긴 것이다.
이 책에서 독자가 놓칠 수 없는 것은 각 시대의 유행과 생활사에
연관된 작은 일화들이다. 가령 뵌에 따르면 인류사에 있어서 최초의
유행은 십자군 원정으로 말미암아 생겨났다고 한다. 십자군은 여러
민족들을 모이게 했으며 양식과 의상의 특수성에 대한 시각을
예리하게 해주었고 도시에 사치와 새로운 욕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십자군 원정의 경험을 통해 외국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와 연관되어 유행이 자라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16세기의 복장규정을 보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각
신분에 맞는 옷감과 장식 및 만드는 방식에 대한 규정까지 있었다.
그러나 뵌은 이러한 복장규정이 칼로 물베기였다고 한다. 가령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법복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고위 성직자는
겉모습에서는 완전히 세속적이었다고 한다. 그 외에 아름다운
헤어스타일을 위해 머리에 벌레가 생기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이나 날씬하게 보이려는 유행을 좇아 몸을 졸라맨 끝에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과 같은 다양한 군상을 통해, 독자는 유럽의
중세와 근대의 인간사를 실감 나게 읽을 수 있다.
18세기의 혁명이 패션에 끼친 영향은 어떠한가.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성공은 급격한 정치 이념의 변화를 반영한 혁신적인 패션을
몰고 왔다. 이때 패션은 권력의 상징이기보다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여성의 드레스는 이전에
허리를 조였던 코르셋과 종형의 부풀린 치마를 버리고 인체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가볍고 부드러운 옷감으로 만들어져 활동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프랑스 혁명기에 과격 공화당원들이 긴 바지를
입음으로써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은연중에 표현했던 사례는,
의상이 자아를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이를 이해하는 의사소통의
매체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패션은 현재 패션의 거울이며 미래 패션의 지침이
된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패션의 역사를 담당한 의류교육자나
패션을 창조하는 패션 전공자는 물론 패션과 문화사 전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재미있는 서적이 될 것이다.
(정흥숙·중앙대학교 의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