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아저씨’ 김상경(58)씨는 올 추석 감회가 남다르다. 이순 가까이 살아오면서 올해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 조상님 은덕이지유. 늦게라도 행운을 잡은 게 말예유.” 그 ‘행운’이 뭐냐고 물었다. “지가 어떻게 국민 앞에 나서고 이름 나고 그러겠어유, 그게 행운이지유” 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하는 이동통신 CF 한방으로 단박 ‘스타’가 된 김씨는 동네 과일가게 아저씨 모습 그대로였다. 서울 공덕동 오래 된 주택가에 낯설게 비집고 선 새 아파트 단지, 그 후문 앞에 김씨네 과일 가게가 있다.

‘공주상회’란 구식 상호도 그렇지만, 벽돌 슬래브 2층 집이며 진열해놓은 과일들 사이사이 ‘천도 3개 1000원’이라 써서 끼워놓은 종이쪽이, 그가 객지 생활 시작했다는 70년대에 멈춰있는 것 같다. 방에 걸린 숫자 큰 달력에는 1일부터 10일까지 죄다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여백엔 방송이나 인터뷰 약속이 메모 돼있다. 그리 바쁜 와중에도 연휴 내내 가게 문을 연다.

“추석이 대목이니께 쉴 수 없지요. 1년에 하루도 안 쉬어요. 벌초는 지난달에 다녀왔고, 고향엔 14일 당일로 다녀올까, 생각 중입니다.” 고향 공주 계룡면에는 어머니와 친척들이 살고 있다.

김씨가 ‘CF 스타’가 된 건 그야말로 ‘벼락치기’ 같은 일이었지만, 그의 인생은 차곡차곡 쌓여왔다. 고향서 논 몇 마지기를 일구던 그는 스물일곱살이던 1969년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5만5000원 들고 올라왔어요. 5만원으로 방 한칸 구하고, 5000원으로 리어카 샀지요.” 매일 새벽 4시 일어나 청량리 청과물 시장 다녀오는 일도 그때 들인 습관이다. “오늘 아침에도 4시에 일어났어요. 일찍 일어나는 참새가 모이 하나 더 주워 먹는다고, 그래야 좋은 과일을 살 수 있으니까.” 여름엔 과일, 겨울엔 풀빵 기계를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3년쯤 고생했다.

그렇게 땀 흘린 끝에 공덕동 버스 정류장 앞에 한 평짜리 가게를 냈다. 그리고 20여년을 과일만 팔아 집도 마련했다. 그러던 어느해 가게가 재개발 계획에 헐리면서 갑자기 ‘실업자’ 신세가 됐다.

“그때 아는 사람 소개 받아 엑스트라 일을 나갔어요. 97년인가, ‘용의 눈물’ 엑스트라였지요.” ‘일하는데 불편해’ 짧게 깎았던 머리 때문에 스님역을 주로 맡았다. 일당은 3만원. 그것도 많아야 한달에 보름 정도 일거리가 있었다. 부인 서원석(54)씨도 음식점으로 일을 나갔다.

“세상에 편한 직업이 어디 있어요. 용의 눈물 찍으면서 눈보라치는 문경새재에서 짚신 신고 벌벌 떨긴 했지만, 계룡산 꼭대기에서 나뭇짐 해서 내려오던데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하긴 초년 고생은 은 주고 산다지만서두.”

그러다가 ‘통합의료보험 공익광고’에 농부역으로 출연하게 됐다. “대사가 꽤 길었지요. 그 전엔 길어봤자 ‘관세음보살’이었거든요.” 이런 그를 눈여겨 본 CF 감독이 이동통신 광고에 발탁했다. 개런티로 얼마나 받았냐고 떠봤다. “아이구, 나도 몰라유. 엑스트라 일당보다는 많이 받았슈.” 작년 11월, 부부가 엑스트라와 식당일로 모은 돈을 합쳐 지금 가게를 열었다.

김씨는 요즘 MBC ‘코미디 닷컴’과 SBS ‘행복찾기’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최근 이동통신 CF 3탄도 찍었다. 출가했거나 직장다니는 3남매와 8살짜리 손자를 둔 ‘할아버지’지만, 가게는 계속할 생각이란다. “원래 청과물이 본업이니께요. 꿀벌은 슬퍼할 틈도 없다고, 요즘 참 바쁩니다. 여지껏 살면서 휴가 한번, 외국 한번 못 갔다왔어요.”

김씨는 세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일곱살 때 지금 어머니를 맞았다. 그래서 매년 이맘 때면 어머니 '성묘'와 '문안'을 동시에 한다. "올해 추석엔 산소 앞에서 마음가짐이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살아계신 어머니께는 용돈이라도 얼마 더 드려야지요."
이제 가게 일 접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인간이 게으름 피우면 행운도 잠든다고 했어요. 내가 리어카 끌다가 행운을 잡은 것도 열심히 살았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께 가게 일 열심히 해야지요." 김씨는 자기 처지를 두고 연신 '행운'이라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행운은 거저 오는 게 아닐 지 모른다. 하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을까. 행운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