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구한말 전남·북 지역에서 항일의병 투쟁을 벌인 죽파
오성술(1884~1910) 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1884년 전남 광산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6년 최익현
선생의 구국 의병항쟁을 주창하는 강회에 참석, 의병 창의를 결심했다.

귀향한 선생은 부친에게 군자금 조달을 요청, 무기를 구입하고 동지
200여명을 규합, 1907년 2월 광주 용진산을 근거지로 의병을 일으켰다.
선생의 의병은 호남의병부대 연합의진인 「호남창의회맹소」에 참여,
전북 고창의 문수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고 고창읍성 탈환, 전남 영광
법성포 탈환전에 참여해 주재소와 우편소는 물론, 일본인 가옥을
불태우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1908년부터 의병에 대한 일본군의 대대적 탄압작전이 시작되자 선생은
전남 광산군 석면산 전투, 함평 대명동 전투, 고막원 헌병분파소 습격,
나주 거성동 전투 등 전라도 지역에서 수많은 유격전을 전개했다.

1909년 7월까지 유격전을 통한 항일의병 활동을 벌이던 선생은 나주
용문산에서「남한 대토벌작전」을 세우고 호남 의병부대의 대대적
탄압을 위해 구성된 일본군 영산포 헌병대와 결사항전을 벌이다 그 해
8월 체포돼 강도죄에 이어 살인·방화죄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1910년
9월15일 대구감옥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