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페터 헤르트링 지음,
박양규 옮김, 비룡소
「할머니」는 교통 사고로 부모를 한꺼번에 잃은 다섯 살짜리
소년 칼레가 할머니와 함께 살게되는 이야기이다. 할머니와
칼레가 서로를 이해해가면서 깊어지고,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살아나갈 힘을 기르는 이야기이다.
얼마 안되는 연금으로 빠듯하게 사는 할머니, 목소리가 크고,
농담과 욕을 잘하는 할머니, 절대로 아무한테도 지는 적이 없는
할머니, 혼자 말하는 습관이 있는 할머니, 바로 어제 일은 기억도
못하면서 몇십년 전의 일은 얘기를 하고 또 하는 할머니.... 이런
할머니와 '오늘 일어난 일, 친구와 약속한 일, 그리고 어떤 것을
경험했거나 계획을 세우거나 하는 등의 일만이 중요'한 아이,
칼레. 공통분모가 거의 없는 그들이 함께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노력을 하는 것은 역시 할머니 쪽. 할머니는 칼레를 데리고
시청에 찾아가 고아연금을 빨리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담임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칼레의 잘못을
덮어주고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 싫어하면서도 축구를 하겠다는
손자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다. 그러면서 칼레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동시에 칼레를 다 키워주지 못하고 죽어야한다는
생각에 시달린다. 칼레는 어리고 언젠가는 할머니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이 이야기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합리한 사회현실을 담은 작품이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이런 이야기가 오로지 진실만으로 가득한
것은, 어린아이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서술자의 시점과
할머니와 칼레의 목소리 그리고 침묵이 섞여있는 이 작품의
독특한 서술방식 덕분이다. 아동문학의 단순함은 때때로 품격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