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발생한 모스크바 오스탄키노 방송탑 화재로 3일 동안 모스크바 지역에 TV방송 송출이 전면 중단됐다. 30일 오후 타워 복구작업에 들어가면서 타워에 방송용 임시 안테나를 부착, 부분적인 방송재개에 들어갔지만 ‘방송없는 3일’은 많은 얘깃거리를 낳았다.
제법 쌀쌀한 모스크바의 밤날씨이건만 주부들은 밤늦게까지 아파트 단지 벤치에 몰려 앉아 잡담을 나누느라 열을 올렸다. TV가 안나오니 좁은 집에 들어가봐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은 모여서 중단된 연속극의 다음 이야기 전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중에서도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한 연속극 「흑진주」가 단연 화제였다. 극 중에서 여주인공 엠마는 부잣집 딸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정체가 탄로날 즈음에 안방극장이 사고로 문을 닫은 셈이다.
비디오 대여점들은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밤 11시가 넘어도 손님들로 붐볐다. 방송없는 3일 동안 반짝 재미를 톡톡히 본 것이다.
반면 경찰은 긴장의 3일이었다. 밤늦게까지 집에서 조용히 TV를 보던 시민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면 사건이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때문이었다. 특히 할 일이 없어진 10대 청소년들이 걱정이었다. 경찰은 이미 『9월 1일 개학 이후 숙제를 많이 내라』는 협조공문을 각 학교로 발송했다.
갑자기 TV가 사라진 문명세계. 러시아의 사회학자들 가운데에는 『흥미로운 연구·관찰 대상이 생겼다』며 흥분하는 사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