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초반 「난 알아요」를 외치며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 10대들의 「아이들(idol·우상)」이 될 만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은 신선했고 메시지는 충격적이었으며
행동은 바로 유행을 만들었다. 그 중에도 리더 서태지는 자기 주장,
자기 색깔이 분명하고 나설 때와 떠날 때를 아는 영민함도 보여줬다.
그 서태지가 4년7개월 만에 컴백했다고 야단들이다.

당시 사회 문화적 상황에서 「서태지 신드롬」은 한국 「10대
문화」의 탄생을 예고하는 듯했다. 헐렁한 힙합 바지와 모자로
상징되는 스노보드 패션에 스피디한 랩과 격렬한 춤, 시니컬한
가사는 현실에 옥죄인 10대들에게 무한한 해방감을 안겨줬다.
10대들은 그의 음악, 그의 행동을 추앙하며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런 폭풍이 어떤 「문화」로 정착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한 시대를 획하는 어떤 장르를 시발한 공은 있다. 70년대의 청바지와
통기타 문화가 일시적 현상으로 그쳤지만 그 나름의 여운을 남기듯
「서태지 문화」도 여운을 남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실
이데아」 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대변자요 보호자 역할까지 했던 그는
꽤 참신한 「청소년 문화」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팬들의 가슴에
「아쉬움」을 남긴 채 미국으로 떠나 은둔했다.

20대가 뭔 은퇴냐는 질시도 받았지만 『아름다운 모습일 때
떠난다』는 약속을 지킨 세 청년은 보기에 좋았다. 상업적인 성공으로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들의 사고는 진솔했고 음악에 대한 열정은
순수했다. 「태지는 음악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표했던 그가
이제와서 은퇴를 번복하고 컴백하는 이유가 뭘까. 그는 『나의 음악을
무작정 기다리는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라고 했다.

꽤 오랜 기간이 흘렀는데도 수천명의 팬들이 공항에 마중나와
「태지 오빠」를 외쳤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서태지적
환경」이 남아있는 것일까. 모든 사회적 환경은 다 그나름의
시대적 당위성과 필요성의 산물이다. 이제 서태지가 재등장한다고
그가 4년 전 일굴 수 있었던 의미있는 변화가 다시 재생될 수
있을까. 모든 사람과 문화는 그에게, 그것에 황홀한 시대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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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면봉○

-- 김정일, 수년 전 미국에 특사 보내 "주한미군 필요" 밝혔다고.
정신이상설이 그래서 나왔었나?

-- 중국내륙 향하던 태풍 한반도 영향 가능성. 중국산 태풍에
납보다 더 무서운 위험성분 경보.

-- 한화갑씨, 이인제씨 누르고 최고위원 1위 당선. 이번 경선엔
불복 확실히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