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 밀란 쿤데라(71) 신작
장편 소설 「무지」(ㅣ'ignorance)가 스페인어판으로 발표됐다.

체코 출신의 쿤데라는 프랑스어로 「무지」의 원고를 썼지만,
스페인어판으로 먼저 나온 「무지」(la ignorance)는 지난 5월말
스페인과 남미에서 출간 한달 만에 10만부 이상 팔렸고,
비평가들로부터 「쿤데라가 옛날의 활력을 되찾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무지」는 89년 동구권 붕괴 이후 체코의 민주화 덕분에
20년 만에 조국을 찾은 두 남녀의 재회를 발판으로 삼아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모색한 작품이다. 쿤데라는
프라하의 봄 이후 공산 정권으로부터 집필 활동을 금지 당하는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지난 75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세계적
베스트셀러「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등을 발표했다.
「무지」의 주인공들은 공산 정권 붕괴 이후 20여년 만에 조국
방문이 가능했던 쿤데라의 체험을 반영하는 분신들인 셈이다.

쿤데라는 그의 동시대 역사 체험에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해석을 끌어들인다. 오디세우스가 오랜 항해를
끝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왔을 때 이타카의 주민들은 그를
기억하지만, 그에 대한 향수는 간직하지 않고 있었다. 너무 오랜
세월이 오디세우스와 동포 사이에 서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
무지의 벽을 쌓아놓은 것이다. 결국 오디세우스는 그가 기억하는
조국에 대한 노스탤지어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무지」의 남녀 주인공도 해외 망명이란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끝내고 돌아왔지만, 옛 친구와 친지들이 그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디세우스처럼 내부의 고향으로 다시 망명을
떠난다. 쿤데라는 자칫하면 감상적 독백으로 그치기 쉬운 이야기에
그 특유의 철학적 주제 의식을 끝없이 펼쳐놓는다. 이주, 부재,
기억, 망각, 향수, 노화, 헛된 현재 등등의 모티브가 사색의
가지를 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 뒤로 사라지고, 작가의
일화에만 몰두하는 독자들은 헛다리를 짚기 마련"이라고 했던
쿤데라의 말 그대로 「무지」의 올바른 독법은 작가의 개인사에
머물지 말고 그 뒤의 근원적 본질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쿤데라 독자들은 소설의 골격을 전해 들으면서 하루
빨리 읽어보기 위해 애를 태우고 있다. 쿤데라는 90년대 중반
이후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느림」 「정체성」 등의 소설을
써서 항상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펴냈다.

사실상 프랑스 문단 작가인 쿤데라가 21세기들어 첫번째로 내는
소설을 굳이 스페인어로 먼저 낸 까닭은 무엇일까. 문학 출판
전문지 「리르」는 그 원인을 「느림」과 「정체성」에 대한
프랑스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쿤데라가 프랑스 문단에 참을 수
없는 서운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과시욕으로
인해 시학도 없이 빈약하고 뻣뻣한 프랑스어"라든지 "쿤데라는
통속적 프랑스 작가가 됐는가"라는 등의 혹평이 쏟아졌던 것.
따라서 화가 난 쿤데라가 스페인어권 비평가들에게 먼저 자신의
신작을 보여주고 싶어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