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아, 오빠….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오빠….”

애타게 그리던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남매는 끝없는 눈물과
포옹으로 50년 묻어 둔 설움을 어루만졌다. 북한의 '계관시인'
오영재(65)씨는 남쪽 형제들을 얼싸 안은 채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걸 언제 보여 주나 아쉬워 했는데 꿈만 같아. 10년 전에
확대한 사진이라고."

오승재(68·한남대 명예교수)씨와 동생 형재(64·서울시립대
교수)씨 등 형제들은, 50년 전 영재씨가 집을 나서기 직전의
사진들을 보여 주며 과거를 떠올렸다. 빛바랜 사진 속엔 교모를
눌러 쓰고 엎드려 미소짓는 홍안의 소년 영재가 있었다.

“뜰에는 대나무·모과나무가 많았었지.”

형제들의 설명을 듣고 있던 영재씨는 애꿎은 담배만 연방 피워
댔다. "맞아, 그랬었지…. 무화과 나무가 많았지." 영재씨가
어렵사리 말을 하는 동안 형제들의 손길은 그의 양복 옷깃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쟁이 나던 해인 1950년, 인민군으로 입대해 고향인 전남 장성을
떠난 지 반세기. '노력영웅' 칭호에다 '김일성 훈장'까지 받은
북한 최고 문인이지만, 상봉의 기쁨에 젖은 영재씨가 흥분을
가라앉히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공항에 내릴 때만 해도 "통일이 가까이 온 느낌이다. 형과 동생들
줄 선물도 준비했다"고 여유를 보였던 오씨였다. "선물에 시도
포함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봐서 시를 쓰겠다"고도 했었다.

"어머니를 뵐 수 있었더라면…." 오씨는 시 대신 한탄을 읊조렸다.
오씨는 모친의 생존소식을 40년 만에 접하고 1991년 발표한 사모시
'아! 나의 어머니'를 통해 사무친 그리움을 토해냈다. '오늘도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다니/그것은/캄캄한 밤중에/문득 솟아 오른
해님입니다/한꺼번에 가슴에 차고 넘치며/쏟아지는 기쁨의 소나기입니다….'
하지만 "너 만날 때까지 살아 있겠다"던 어머니 곽앵순씨는 1995년,
8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전장에서 비로소 문학에 눈을 떴다는 오씨는 1985년 김일성과 당을
찬양한 장편 서사시 '대동강'을 발표해 북한 문단에 우뚝 섰다. 오씨는
'늙지 마시라' 같은 사모시, '분렬의 장벽은 무너지리' '자리가
비어 있구나' 등에서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노래했다.

(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