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타의 매(1941· The Maltese Falcon)
감독: 존 휴스턴,
출연: 험프리 보가트, 매리 애스터, 페터 로레
1940년대 할리우드의 주도적 스타일 혹은 내러티브 경향이었던
필름 누아르의 진정한 효시이자 그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사의
고전. 미국 펄프 픽션(통속 소설)의 인기 작가 대실 해미트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을 통해 존 휴스턴은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 험프리 보가트는 영화의
대사처럼 지극히 예측불허인, 복합적 캐릭터 샘 스페이드 역으로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그만큼 역사적 의의가 큰 작품인 셈.
영화는 16세기 이래 전해오는 황금 조각상(말타의 매)의 행방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살인과 음모, 배신의 드라마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치밀한 플롯이 흥미진진하다. 연이어 벌어지는
살인의 진범이 과연 누구일까를 점치는 재미가 작지 않다. 결코
뜸을 들이는 법 없이 경제적으로 이루어진 편집이 재미를 한층
강화시킨다. 심지어 영화는 사립탐정 샘이 범인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어 재미가 배가된다.
필름 누아르의 절대적 캐릭터인 '팜므 파탈', 원덜리(매리
애스터)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품고 있는 샘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녀를 마침내 경찰에 넘기는 라스트는 특히 강렬한 여운을
전해준다. 허무와 냉혹함, 야비함이 팽배했던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고전이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력적으로 다가서는 건 무엇보다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 앙상블 덕분이다.
외국인의 눈에 때론 지나치게 거칠고, 때론 어색하게 비쳐지기도
하는 보가트의 연기는 오히려 어두침침한 누아르의 세계에 완벽하게
부합된다. 매리 애스터는 요부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약해 다소
실망스럽지만 보가트와 조화를 이루기에는 전혀 손색이 없다.
인정사정 없는 범죄 조직의 두목이자 자상한 아버지 상을 동시에
보여주는 가트만 역의 시드니 그린스트릿이나 카이로를 연기하는
독일 출신의 명배우 페터 로레의 세련된 연기 역시 보가트와 확연한
대조를 보이면서 영화의 맛을 더욱 짙게 해준다. 스타일 측면에서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시적 사실주의,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
등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다는 명암의 대비가 뚜렷한 영화의 조명등
미장센처럼.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