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혁보단 기존 정책 매듭짓는 '마무리 투수' 성격…
재계 "실물경제 아는 사람들" 반겨 ##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8월 7일 집권 후반기를 이끌기 위한 개각을
단행했다. 모두 11명의 장관이 교체된 이번 개각에서 주목받은 것은
새 경제팀의 면모였다. 현대그룹 사태와 금융시장 불안 등으로 다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한국 경제의 활로를 뚫어야 할 막중한 과제가
새 경제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개각이 단행된 날, 정부와 '벼랑
끝 대치'로 치달은 현대그룹 사태 등의 여파로 주가가 무려 30여
포인트 하락함으로써 새 경제팀의 앞길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예고했다.

이규성 강봉균 이헌재에 이어 출범한 이번 4기 경제팀의 특성은
기획예산처 장관에서 경제팀 수장으로 말을 갈아탄 진념 재경부장관의
성향에서 어느 정도 엿보인다. 진 장관은 '직업이 장관'이란 농담이
따라다닐 정도로 관운이 좋고 친화력이 뛰어난 관료로 꼽힌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을 거치면서 동자, 노동(4번 유임), 기획예산위원회,
기획예산처(2분 유임) 장관을 지낸 경력에서 나타나듯 그는 순탄한
길을 달려온 정통 관료다. 때문에 인화력을 바탕으로 일을 원만히
처리하지만, 추진력과 개혁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진두지휘한 공공부문 개혁이 결국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것도 어느 쪽으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고
몸을 사리려드는 관료로서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새 팀, 경제기획원서 한솥밥 먹던 사이

이런 진 장관의 업무 스타일상 이번 경제팀은 강한 개혁 드라이브나
참신한 정책 아이디어로 승부하기보다는 그동안 벌여놓았던 기존 정책을
매끄럽게 매듭짓는 '마무리 투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많다. 특히
마지막까지 재경부 장관직을 놓고 경합을 벌인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벌개혁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진념 장관을 새 경제팀의 수장으로 택한 임명권자의 의도가 어느 정도
엿보인다.

때문에 이번 개각을 통해 경제개혁 가속화를 기대했던 사람들로부터는
진념 경제팀에 대해 다소 실망스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 상황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 "현재의
급박한 경제상황에 비추어 정부의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이번
개각은 자리바꿈에 불과하다"는 등의 반응들이 그것이다.

특히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이 총대를 메고 막판까지 밀어붙였던 현대
사태를 새 경제팀이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문제는 새 경제팀의
'색깔'과 관련해 주목되는 부분이다. 98년 기아그룹 법정관리인을
맡았던 진념 장관이나 IMF 직전 한국투신 사장을 지낸 이근영 신임
금감위원장 모두 과거 실물경제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로,
이헌재ㆍ이용근 팀에 비해 재벌 개혁에 대한 강성에서 훨씬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새 경제팀이 전임
경제팀에 비해 훨씬 '말이 통하는 상대'로 바뀌었다며 내심 반기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실물'을 아는 사람들이 등장한 이상 정책의
융통성을 기대할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금감위 측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일이 어려워졌다는 불평을 해온 현대그룹은
개각 발표 후 "이제는 대화할 만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이번
개각의 최대 수혜자는 현대"라는 항간의 소문이 단순히 소문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새 경제팀의 화답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현대문제
처리는 채권단이 알아서 할 일이고, 정부는 감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진념 장관) "구조조정은 시장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현대문제는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현대와 협의해 잘 처리할
것으로 본다"(이근영 위원장)는 등 새 경제팀의 현대사태에 대한
일성에서는 현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던 전임 경제팀의 '사생결단식'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

개혁성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사실 이번 경제팀의 강점은 팀워크에
있다는 것이 관가의 중론이다. 진념 장관, 이기호 경제수석, 전윤철
신임 기획예산처 장관 모두 과거 경제기획원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라
팀워크만큼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전임 팀에서 자주 불화설이 나돌던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경부
장관의 관계가 바람직한 상태로 복원될 것이라는 데 거는 기대감이
크다. 이와 관련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신임 경제팀은 역대 어느
경제팀보다 화합과 협조체제가 잘 구축될 것"이라며 "재경부 장관이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부총리로 승격될 예정인 만큼 부처간 업무조율이
제대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관가에서는 이기호 경제수석의 유임과 진념 장관의 유연한 업무
스타일로 볼 때 새 경제팀의 힘의 중심이 청와대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즉 이기호 수석의 역할이 좀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진념 장관의 성향보다는 경제구조조정에
강한 집착을 보여온 김대중 대통령의 향후 경제개혁에 대한 입장이 새
경제팀의 색깔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 새
경제팀의 진용만으로 향후 정부의 대재벌 정책을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다소 유보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새 경제팀의 개혁 성향과는 별개로 새 경제팀이 풀어야 할 현재의
과제들이 막중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새 경제팀의
진용을 짜면서 기존 인물을 전보하거나 승진시킨 데서 이제까지
경제개혁의 큰 줄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는 임명권자의 의중이
읽혀지기는 하지만, '마무리 투수'가 제 역할을 못할 경우 그간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중대한 시점에 놓여있다는 지적이다.

●시장 신뢰 회복이 선결과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새 경제팀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시장의 신뢰 회복이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그간 정부에서 진행해온
개혁프로그램의 완성이 이번 경제팀의 어깨에 달려 있다"며 "그간
총선과 남북 정상회담 때문에 뒤로 미뤄온 금융 기업구조조정을 제대로
시행해 시장의 인정을 받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동안
금융시장의 안정을 앞세워 정부가 직접 시장에 개입해온 '임시방편적
처방'을 버리고 시장이 인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새롭게 일을 벌리기보다는 일을 매끄럽게 마무리지을 수 있는 새
경제팀의 인선이 오히려 돋보인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개혁의
매끄러운 마무리를 위해서는 구조조정의 역량을 문제가 있는 곳에
집중하는 효율적인 전략이 중요하다는 충고도 제기되고 있다.

새 경제팀 역시 자신들의 과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분위기다. 진념 장관은 개각이 발표된 날
기자간담회에서 "공공 금융 기업 노사 등 4대 부문의 개혁을 빠른
시일 내 마무리짓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성장 엔진을 바로 세우는
것이 시급한 현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 연말까지, 길게는
내년 상반기까지 1년 이내에 4대 부문의 개혁을 마무리하고 시장경제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거시경제 호전이나 4대
부문의 개혁은 빛이 바랠 것이며, 미래도 없다"는 것이 진 장관의
각오이기도 하다.

과연 앞날이 불투명한 한국 경제를 떠맡은 '진념 경제호'가
'마무리 투수'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