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에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은 병원에서 원외처방전을 받을 경우 문을 연 약국을 찾기 힘들어 밤새 고통을 참아야 하는 등 야간 응급실이 의약분업 사각지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어린이 환자용 약을 취급하는 약국이 드물어 아픈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통이 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의약분업 시행 첫날인 1일 밤 11시 갑자기 배가 아파 울산 모병원 응급실을 찾은 김모(45·울산 남구)씨는 의사가 『특별한 증상이 없으니 약국에 가서 약을 사라』며 원외처방전을 발급했으나, 문을 연 약국을 찾지 못해 밤새 복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날 울산 동강병원과 울산대병원 응급실이 밤 9시부터 2일 새벽까지 원외처방전을 발행한 건수는 모두 39건에 달했지만, 원외처방을 받은 환자 대부분은 약국을 찾지 못해 이튿날 오전 약국이 문을 열 때까지 고통을 참아야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전시는 응급실 원외처방전 발급에 대비해 지난 1일 야간 당직약국 8곳을 지정했으나, 이날 오전까지 문을 연 약국은 4곳에 그쳤다. 대전시 관계자는 『약사 중엔 여자와 노인이 많아 야간에 문을 여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다음날 오전에는 문을 닫아야 하는 부담 때문에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현행 약사법에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 중 병원에서 약을 탈 수 있으려면 6시간 이상 진료를 받거나 보건복지부가 정한 의식장애, 급성 호흡곤란 등 26개 증상과 골절, 복통 등 8가지 준(준) 응급증상을 보여야 한다.

3세 이상의 어린이가 야간이나 공휴일에 고열이 날 경우, 응급환자로 분류하지 않는 규정이 있어 심각한 사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일 새벽 96년12월생 아들 때문에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30대 부부는 아이가 만 3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응급환자로 분류되지 않아, 원내 처방을 받지 못하고 문을 연 약국을 찾아 서울 전체를 헤맸다.

의사들이 쉽게 표기할 수 있는 약품명 대신 암호 같은 의료보험청구기호를 원외처방전에 표기해 환자와 약국을 골탕먹이기도 했다. 일부에선 부루펜을 「A05002021」, 크로페신정을 「A01304361」과 같은 방식으로 처방했고, 「타이레놀 0.833개」 같이 소수점을 이용해 처방, 약국을 곤란케 하기도 했다.

어린이 환자용 의약품 공급 문제도 심각했다. 2일 경기가 있는 7살 아들을 데리고 서울대병원을 찾은 최계육(여·29)씨는 『몇 시간 동안 약국을 전전했지만 「3개월 전에 주문해야 하는 희귀약이라 지금 없고, 나중에 집으로 부쳐 주겠다」는 말만 들었다』고 말했다.

2일 오전부터 서울 용산구 서계동 소화아동병원과 인근 대형약국은 서울 전체에서 어린이 환자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윤재용(32)씨는 『18개월짜리 아이의 약을 짓기 위해 7시간 이상을 헤맸다』며 『종로를 포함해 대형약국 5곳을 돌았으나 「소아용 시럽은 판매가 부진해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라」는 얘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암 같은 중병을 앓고 있는 어린 환자들의 고통은 더 심했다. 영세민 박모(여·34)씨는 5살 아들에게 항암주사를 놔주려 2일 서울대병원을 찾았다가 『전공의가 없어 주사약이 있다 해도 놔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발을 동동 굴렀다.

약국마다 전자 저울이 없어, 「어른의 100분의 1 분량」 처럼 미세하게 조제해야 하는 영아용 약도 허술하게 조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병원 앞 대형약국 약사 S(53)씨는 『유아들은 아주 작은 양의 약 차이로도 쇼크를 일으키기 때문에 특수 조제실과 저울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의료원 소아과 이상일 과장은 『유아와 어린이는 면역성이 약하고 어른과 다른 희귀한 증후군도 많다』며 『최소한 미취학 아동들에 대한 의약분업은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