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불우하게 자랐다. 선택은 창녀 아니면 도둑이었다. 그녀는
도둑을 택했다. 베르베르 소설의 이 여주인공은 "섹스를 좋아해 그걸
직업으로 삼는 건 싫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 내과의사 월터
스코트는 "섹스란 자전거타기와 같다. 힘은 적게 들이고 재미는 듬뿍
볼 수 있으니"라 했고,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섹스란 거래이며
뇌물, 협박 수단이고 고문이며 무기"라 했다.

바로 이런 섹스가 '아름다운 성'이란 이름으로 토요일 밤 SBS
TV에서 방송되고 있다. 첫 방송부터 온갖 고초를 겪은 프로그램은 이제
자리를 잡았다. 드러내놓고 말하는 섹스, 섹슈얼리티가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운가 보여준 것 만으로도 칭찬받을만 하다.

섹스란 사실 교육(education)보다 자기학습(learning)이 중요하다.
시청자들이 '아름다운 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자기학습'하게 한
게 성공 요인이다. 이 프로그램은 또한 보통 출연자들이 성공시켰다.
TV에 나와 신혼의 성, 여성의 성욕을 용감하게(?) 말한 평범한 출연자들은
정말 건강하고 솔직했다.

지난 토요일은 '10대의 성'이 주제였다. 교실에서 "왜 남자들
키스마크는 자랑거리고, 여자는 아니죠?"라며 왜곡된 성의식을 지적하는
여학생을 보며 나는 세상 변화를 실감했다. 여교사도 든든했다. "우리가
지금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피임법까지
자세히, 충분히 가르쳐야 한다"고 현장의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운 성'에도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이
프로그램이 노른자위로 내세우는 구성애씨 강의이다. 구씨 강의 수준은
토론자는 물론 시청자 수준도 따라가지 못한다. 예를 들어 앞의 여학생과
교사는 피임에 대한 상식을 논리적으로 말하는 반면, 구씨는 '절대 남녀
둘이 함께 있지 말 것' '성적은 그대로 유지할 것' 등을 대책이라고
내놓는다. 썰렁하기 그지없다.

"예로부터 남자는 준비성이 없고 여자는 중심성이 없다"는 식 표현도
비논리이다. 구씨는 좀 더 공부할 필요가 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반말투는 그렇다쳐도, 한정된 청중에게 하는 강연과 TV 강의는 엄연히
다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씨를 존경한다. 우리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성'에서의 강의는 본인
표현대로 '준비성'이 없고 '중심성'이 없다.

둘째, 진행자들이 너무 긴장해 있다. 조혜련 박철 표인봉은 방송 초기
아슬아슬한 수위를 넘나드는 묘기를 연출하더니, 이젠 모든 걸 포기한
듯하다. 세상 고민을 다 떠안은듯 심각한 세 사람 얼굴을 보면 우리
사회의 경직성을 실감하게 된다. 남녀 관계처럼 프로그램도 진정 자유로울
때 빛나지 않는가? ( 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