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자 200명을 어떻게 선발했을까.

명단은 남한의 각 시·도별로 20명 안팎으로 비슷한 규모로 돼 있고,
찾으려는 남쪽사람들의 인적사항도 비교적 잘 정리돼 있어, 평소
북한이 남한 출신자들의 명단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북한은 1958~60년의 '중앙당 집중지도 사업', 1964~69년의
'주민등록사업'과 1971년 2월의 '3대 계층 51개 부류 분류사업'
등 3차례의 주민성분 조사를 통해 전 주민들의 신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1998년 2월부터 인민보안성(경찰)을 통해 실시하는
'흩어진 가족찾기사업'을 통해 확보된 자료를 통해 '납·월북자
명단'을 작성해놓고 있을 수도 있다.

북측의 200명 선발기준은 무엇일까. "사상성과 지위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됐을 것"이라고 조명철 전 김일성대 교수는 말한다.
남쪽의 가족·친척들을 만나면 자칫 '사상적으로' 흔들리기 쉬운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학자나 문화예술인 등 북한에서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 포함돼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후보자 중에 당과 정권기관의 고위인사들은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가 이항구씨는 "북한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남한 출신들을 당과 정권기관 등의 핵심 자리에는 배치하지 않았고,
다만 통일을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각 지역의 인민위원회(시·군청)
부위원장에는 상당수 기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북한의 200명은 남한출신으로 북쪽 체제에서 잘 살아온 대표적인
사람들로 구성됐다는 의미이다. 북한체제가 남한 못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일종의 선전효과를 노린 것이란
지적이다.

이는 1차 후보자 400명과 2차 후보자 200명을 완전 공개리에
컴퓨터로 추첨한 우리 측의 선정방법과는 대조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