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삼국지는 그 번역 스타일만 갖고도 책을 묶을 만하다. 조선시대
언해본으로부터 정비석 박종화 이문열에 이르기까지 대가들이 낸
책만 십수권이고 만화까지 더하면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여기에
던져진 또 하나의 삼국지인, 김구용 삼국지는 '정본완역'이란
무기를 들고 독자 앞에 섰다. 일본판의 중역도 번역자의 토가
달린 평역도 아닌 원본 그대로의 삼국지를 충실히 번역해 냈다.
의역이나 줄거리의 가감도 없다. 그러면서도 현재의 언어감정에
맞게 오늘 우리의 말로 옮겨냈다. 등장인물 사전, 삼국시대 지도,
전투 형세도, 명 시대에 그려진 관련 삽화, 자세한 역주 등도
눈에 띈다. 솔출판사, 7권. 각권 8000원.
▲ 크레이지
청소년과 그들이 열병을 앓으며 지나는 사춘기를 지칭하는
표현은 많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느니 주변인이라느니. 열
여섯살 소년 작가 벤야민 레버트의 자전소설 '크레이지'는
그 제목 자체가 이미 사춘기적이다. 한 밤중에 여학생 기숙사
사다리를 기어오르고, 학교와 집으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려
하고,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정신은 부모의 이혼과 친구들의
따돌림, 학교가 주는 스트레스로 인해 미쳐(crazy)버리고 만다.
루소의 '고백록'이 고매한 지성 속에 숨은 저열한 내면을
드러내 찬사를 받았다면, 크레이지는 지성적일 순 없어도 생명
에너지로 충만한 청소년들의 방황을 솔직하게 털어놔 매력있다.
민음사, 8000원.
▲ 열여덟 산골 소녀의 꽃이 피는 작은 나라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사무곡 산골마을은 이제 18세 이영자
양과 그의 아버지만이 유일한 주민이다. 전기도 없고 수도도
없고, 따라서 컴퓨터는 고사하고 TV, 냉장고도 없다. 그녀에게
바깥 소식을 전해주는 것은 건전지를 채워 넣은 조그만 구식
라디오. 배운 공교육은 1주일간의 초등학교 나들이가 전부다.
무엇하나 풍족한 것이 없는 생활이고 남보다 더 배운 것 없는
삶. 그런데 그는 도시의 또래 소녀들보다 행복하고, 그들보다
아빠를 사랑하며, 시와 소설을 동경한다. 그리고 18세의 내면을
드러내 이렇게 글도 썼다. 때묻지 않는 인간의 순수와 소녀적
감성이 물씬 풍기는 에세이다.신풍, 7500원.
▲ 임시정부의 숨겨진 뒷 이야기
한국 근·현대사라는 묵직한 분야를 전공하며 60여권 80여종에
이르는 전문분야 저서와 학술논문을 부지런히 발표해온 성신여대
이현희 교수가 숨겨진 임정의 놀라운 이면사를 낱낱이 골라
흥미롭게 엮은 '임시정부의 숨겨진 뒷 이야기'를 학연문화사에서
냈다. 432쪽의 이 책은 임정의 거룩함만을 다루지는 않았다. 27년간
임정 간판 밑에서 갖은 고난을 이겨내며 항일투쟁사를 만든 주역들의
인간적 이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임정이 지닌 민족사의 숭엄함에
인간미를 더했다. 하긴 '손에 잡히는 역사 에세이'로 일반인을
위한 역사 읽기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었던 그였다.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