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2인자들
데이빗 히넌-워렌 베니스 지음
최경규 옮김, 좋은책만들기
서울 삼청동에 가면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라는 전통찻집이
있다. 2인자를 자처하는 그 상호의 넉넉함 때문에 필자는 종종 그곳을
들른다.
동양에는 오랜 옛적부터 2인자 철학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중국
역사에서 훌륭한 2인자들을 들라고 하면 안자(晏子)와 관자(管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안자는 형편없는 군주 경공을 보좌하는 데 뛰어난
순발력과 결단력을 발휘하였고, 관자는 그런 대로 무난한 군주 환공을
도와 천하를 차지하도록 하는 데 자신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였다. 사마천도
'사기열전'에서 '안자의 말고삐라도 잡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안자를 높이 평가하였다.
미국 대통령 트루먼도 그의 충실한 참모였던 마셜이 죽었을 때 마셜을
이렇게 평가하였다. '내가 죽으면 마셜이 나를 자신의 부관으로 임명하여
그가 나를 위해 했던 일들을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리더가 죽어서 그의 부관이 되기를 바랄 정도로 훌륭한 2인자들에 관한
책이 학식과 통찰력을 두루 갖춘 교수들의 공저로 최근에 출간되어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다.
1990년대 초 파산 위기에 처한 크라이슬러 자동차 회사를 극적으로
살려낸 로버츠 러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를 돕고 있는 스티브
발머, 트루먼 대통령을 보좌한 조지 마셜, 마우쩌둥을 위해 미련없이
일인자 자리를 내어주고 줄기차게 참모 역할을 해준 저우언라이(주은래)
등등 정치, 경제, 스포츠, 문학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이인자들을 흥미롭게 분석해놓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주목 받지 못해도 너무나 중요한 사람'들로,
'진정한 리더십은 일인자가 아닐 때 발휘된다'는 비밀을 알고 있는
인물들이다.
마우쩌둥과 저우언라이의 관계를 명쾌하게 정의한 닉슨의 말은 이 책
전체의 주제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마우쩌둥이 없었다면 중국의 혁명은
결코 불붙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다 타서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협력자의 정신이다. 리더 속에 있는 불이 다 타서
재가 되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돕는 협력자의 정신은 모든 사람을
승자로 만드는 관건이 되는 셈이다. 요즈음 자주 말하는 상생의 정신과도
통하고 묵자 선생이 말한 교리의 정신과도 통한다. 영어로는 win-win이라고
하던가.
이런 정신을 소유한 2인자들은 무엇보다 '건강한 자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다. 건강한 자아라는 것은 1등만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2등, 3등이 되기를 자청하는 '특별한 자신감'을 기초로 하고 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열등감과 싸우며 자아를 승화시킬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2이인자야말로 리더보다도 어떤 의미에서는 더 훌륭한
인격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리더들은 대개 모순으로 가득찬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다. 이 책에서도 '리더들의 충돌'이라는 항목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나폴레옹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를 들고 있다.
나폴레옹이 옷을 입혀주는 부관에게 말했다. '옷 좀 천천히 입히게.
지금 바쁘단 말일세.' 이러한 리더들의 모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건강한 자아와 특별한 자신감으로 무장한 인격이 요청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리더의 모순을 감당할 줄 아는 인격을 가리켜
'소박한 자아'라고도 표현하였다. 소박은 모순을 이기는 힘이다.
리더와 2인자 간에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갈등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공동목표에 대한 신념이다. 그 신념이
'함께 일하면서 겪게 되는 어떠한 불편도 기꺼이 받아들일 만큼 강할
때' 비로소 기적적인 협력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 법이다.
일인자만을 목표로 삼고 그런 방향으로만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이 책은 건전한 인격교육이라는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한 이익집단의 리더와 2인자가 협력관계를 이루면서 다른
이익집단들을 몰락시키는 비정한 생존경쟁의 사태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관한 논의는 이 책의 논지를 넘어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성기·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