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레기도 자원인데 왜 버립니까?...생명자체 존중하는 환경이념을" ##
## 음식찌꺼기 퇴비로, 잡초는 부엽토로...라면찌꺼기도 씻어 ##
## 산기슭 곳곳 폐비닐,내려오면 러브호텔...난개발에 절망감 ##
올해로 우리 나이 일흔다섯을 맞은 박경리 선생은 요즘 좀처럼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 작년 여름 건립된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의 '토지문학관'에
칩거하고 있다. 원주 단구동에 살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닭장과 거위장 문을 연다. 손수 기른 상추에 아침을 먹고,
텃밭을 일구고, 마당의 돌을 고르고, 뒷산에 올라 칡덩굴을 뽑으며 산다.
"나는 기어가는데, 풀은 날아가요." 그는 "물길(수로) 만들고, 나무
심느라 종일 재미나게 지낸다"고 말한다. 문학관장인 이성선(59) 시인은
"닭들이 선생님을 몹시 따라서, 선생님이 산에 가시면 줄줄이 따라
올라간다"며 웃었다.
지난 6일 '동아시아 환경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한 각국 환경
전문가들은 영월 동강에 가는 길에 잠시 선생을 찾았다. 그는 아주
오랫만에, 그리고 아주 잠깐 연단에 섰다. 검은 마로 지은 옷에, 반백의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올린 노작가는 러시아, 호주, 일본, 중국, 베트남
등에서 온 이들에게 "야인으로서 한마디하겠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역사는 인간의 자유를 위한 혁명은 수없이 되풀이했지만, 생명의
평등을 위한 혁명은 단 한번도 없었다"며 "인간을 위해 다른 종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간 위주의 환경운동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존중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연단에서 내려, 거처로 돌아가던 그와 어렵사리 마주 앉았다. 그는
"도대체가 절망적"이라는 말로 작금의 난개발을 노여워했다.
"내가 요즘 욕이 늘었어요. 매일 산으로 폐비닐과 칡 뽑으러 다닙니다.
산기슭 어디를 파도 폐비닐이 허옇게 나와요. 파내고 보면,그 밑은
완전히 죽은 땅이고. 미생물도 안삽니다. 얇은 겉흙에 칡덩굴만 뻗어올라
온갖 나무에 기어오르니, 겨울에 보면 숲이 꼭 쓰레기 더미 같아요.
오늘 아침만 해도 산자락에 붉은 나리꽃이 곱게 폈는데, 글쎄 동아줄
같은 칡 덩굴이 갸냘픈 나리꽃 대궁을 칭칭 감고 있잖아요. 늙은이
혼자 속으로 욕하면서, 칡덩굴 잡아뽑느라 애먹었어요. 엉킨 포장지
뜯으면서도 내 혼자 욕하고…. 산과 들에 러브호텔, 위락단지, 카지노가
줄줄이 들어서는 것 보고는 절망하지요. 진짜 절망적이에요."
그는 지난 80년부터 원주에 뿌리내려 산다. 단구동 시절부터 지금까지,
담 밖으로 쓰레기를 거의 내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버릴게 거의 없어요. 먹는 것은 퇴비 만들고, 밭에 잡초는 뽑아
부엽토 만들고…. 라면 찌꺼기는 물에 씻어 바위에 올려놓지요. 새들이
와서 쪼아먹어요. 연탄은 뜨거울 때 눌러야 잘 바스라지는데, 밤에도
한번씩은 갈게 됩디다. 겨울 새벽에 혼자 마당에서 연탄 밟다 하늘보면
별이 이만큼씩, 내 주먹만해요. 발 밑에선 신발창 타는 냄새가 나구요."
다시 개발 얘기가 나왔고, 그는 단호하게 노여워했다.
"20년전 원주 왔을 때, 근처에 공단이 처음 생겼어요. 택시 운전사에게
'강원도는 산과 들이 재산'이라고 했더니, '그래도 먹고 살아야지요'
합디다. 절망감이 들었어요. 제 살 잘라먹으면 뭐가 남아나겠어요.
러브호텔이니, 카지노니, 온 나라에 들어서는게 전부 노는 시설,
소비시설입니다. 모두들 노는데 전력투구하고 있어요. 열심히 일하다
잠깐 쉬면서 보리밥에 고추 하나 베어물면, 그게 천하일미죠. 요새
사람들 그렇게 열심히 놀아도 행복하지는 않습디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시장 귀퉁이에 나물 광주리 내다놓고 앉은 불쌍한
할머니들이나 쓸 말입니다. 호텔 짓는 사람이 '먹고 살겠다'는건
어불성설이지요. 나는 지구 온난화를 몸으로 느낍니다. 원주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여긴 추워서 감나무, 백일홍은 안된다'고 했는데,
지금 마당에 둘 다 있어요. 잘 되요. 이런 식으로 치달리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올 봄 주위 산에는 잣나무, 참나무가 3000그루쯤 심어졌다. "많이
죽었어요. 파보니 뿌리를 묶은 고무벨트도 자르지 않고 그냥 심어
놨더군요." 그는 "내일 나무가 죽어도, 나는 오늘 품삯만 받으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슬프다"고 했다.
"다들 그렇습디다. 지식인도 마찬가지에요. 30평 아파트 사는 사람이
40평으로 늘려가야 되겠다, 이런게 지식인의 꿈이니 답답합니다. 이런
것 말고, '내 생애에 이 일을 이뤄야겠다', 이런 꿈을 가져야 평생
활기와 흥분이 있고, 성취감을 느낍니다. 얼굴을 시커멓게 태우고,
온갖 위험을 무릎쓰면서 깊은 물 속, 뜨거운 불 속을 넘나들지요."
그는 "하지만 내가 아무리 외쳐도 도대체 변하지들 않으니, 나도
답답하고 화가 난다"고 했다. "그래서 '나이도 먹었는데 잔소리
그만하고, 나는 내 밭이나 만지다 이래 죽어야겠다'고 결심하지요.
그러다가 '내가 이렇게 이기적으로 살아도 되나, 내 존재 가치는 어디
있나'싶어 다시 글을 쓰게 돼요."
박경리 선생은 "오늘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다"며 웃었다. 문학관을
나서면서, 그는 "요새 인터뷰는 안한다"던 처음 말과 달리, 젊은
기자의 손을 꼭 쥐었다. 오랜 노동의 흔적이 묻은 그 손은 거칠고,
따뜻하고, 힘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