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장 14배 "환상의 지하도시"..."여기선 소비가 곧 문화다" ##
젊음, 욕망, 그리고 (인정하든 않든) 문화와 소비가 동의어로
불리는 시대. 축구 경기장 14개가 들어가는 지하 도시 '코몰'이
요즘 젊은이들로 터져나간다.
지난 5월 초 문 연 강남구 삼성동 아셈 센터 지하 코엑스몰은
'또 하나의 대형 쇼핑몰'을 넘어선다. 3만6천평 규모에 크고
작은 상점이 300여 곳. 이곳서 일하는 한 직원 표현대로, "한
달 내내 햇볕을 보지 않고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뭐든지 다 있"는
자기완결적 도시이며, 이미지와 재현이 실제를 대신하는 거대한
시뮬라시옹의 결정체다.
지하철 삼성역에서 메가 박스에 이르는데 10분이 넘게 걸렸다.
통로 옆의 휘황한 상점에 을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데, 문득 거리
표지판이 눈에 띈다. 지금, 강남의 지하 쇼핑 몰이 아니라, 호수
식당가를 거쳐, 숲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아닌가! 열대 산책로,
계곡길, 숲 길같은 통로(이걸 거리라고!) 이름이나, 해양 수족관,
캐릭터 상품, 영화, 전자 게임까지,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온통
‘현실의 재현’이며, 결정적으로, 가짜들이다.
겨우 두달 넘는 짧은 기간 동안 코몰이 이뤄낸 신화는 거대
규모의 신화다. 크고 작은 영화관 17개를 묶은 멀티플렉스
'메가 박스'는 개관 두달 여만에 50만 관객으로 기네스
협회에 최단 기간 입장객 기록 인정을 신청했고, 바닷물
2500톤을 끌어다 놓은 초대형 수족관은 심해 풍경을 천연덕스럽게
도심 한가운데로 불러들인다.
코몰은 주말 이틀이면 20만명을 빨아들인다. 이들이 쓰고
나가는 돈이 줄잡아 200억원 가깝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 추산.
이정도면 단일 시설물로 세계 최고라 해도 부족함 없는 소비
욕망의 해방구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력의 중심에는 영화관이
있다. 17개나 되는 스크린은 '되는' 영화 일색이다. '미션
임파서블2'냐 '글래디에이터'냐, 그도 아니면 요즘 잘
나가는 유지태 보러 '동감'으로 갈거냐 신현준이 휙휙 나는
'비천무'로 갈거냐. 하나를 놓치면 다음으로 미끄러져 간다.
17개관 중 예술 영화관 하나 없이, 철저한 자본 논리로 움직인다.
평일 1만명, 주말 2만5000명의 엄청난 관객 몰이는 어쩌면 무색
무미한 유행족들을 담아내는 그릇 노릇으로 그친다.
극장 바로 뒤엔 거의 초현실적인 시뮬라크르, 해양수족관
'아쿠아리움'이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어디 서울 한복판서
식인 상어에 스파이더 크랩을 보랴. 허연 배를 드러내고
무심하게 헤엄치는 상어와 고기 떼를 보는데 어른 한사람
당 1만4500원을 기꺼이 치르는 곳이다. 2500톤의 바닷물이
수조 40여 개에 담겨, 4만 마리 물고기를 품는다. 본전은
뽑아야겠다는 듯 느릿 느릿 움직이던 관객들. 꾸역 꾸역 밀려
들어오는 사람들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탄 것 처럼 수조에서
다음 수조로 흘러가고 있다.
오후 5시를 넘어서자 중앙 통로는 점점 더 바글거린다. 메가
박스 건너편, 코몰 중앙에 자리잡은 것은 대형 캐릭터 전문점이다.
무려 다섯 곳이나 되지만,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 키티, 토토로,
미피, 곰돌이 푸우가 우산에서 손톱깎기, 연필까지 벼라별
일상용품에 다 얹혀 있다. 이들 캐릭터 상품을 사기 위해, 또는
구경하기 위해, 목마른 청춘들이 가게 안으로 물밀듯 밀려들어온다.
대학생 이화은(19)씨는 "신촌이나 강남역 주변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 하지만 여기는 한 곳에서 다 해결할 수 있어 편하다"며
"방학 후 이런 저런 약속으로 거의 매일 온다"고 했다.
대형 빌딩 지하의 이런 복합 소비문화공간은 점점 더 늘어날
추세다. 반포 고속터미널 옆에 들어서는 매리어트 호텔 지하에도
이런 대규모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들어 설 거라고 하지 않던가.
김치박물관이 코몰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참 찾았다. 물어
물어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김치박물관 말고는 주차장 뿐이다.
박물관 김주희 큐레이터는 "하루 10명에서 많으면 200명까지
찾아 온다"고 했다. 지하 1층 코몰과 한 겹 차인데. 입장객
수가 심리적 거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코몰이 테헤란 밸리 끝자락에 위치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성공한, 그리고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욕망을 배설하는
곳. 코몰은 거대 규모의 성공 신화를 확대, 유포하면서 평범한
젊은이들을 소비의 낙원으로 초대한다. 몇 시간 다리품을 판 뒤
밀레니엄 플라자로 다시 빠져나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이정표. '테헤란 밸리'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의 연두색이
더욱 도드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