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남 코엑스홀의 멀티플렉스(multiplex) 메가박스. 수만
인파를 뚫고 주말 티켓 구입에 성공한 '한영화'씨는 "아, 이래서
멀티플렉스, 멀티플렉스 하는구나" 싶었다. 대두 두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전혀 불편함이 없었던 앞뒤 좌석의 '고도차', 10분
간격으로 상영을 계속, 선택폭을 넓혀준 17개의 스크린. 더욱이
극장 주변에 있었던 수족관 아쿠아리움, 120개의 점포가 들어선
쇼핑센터, 현대백화점, 초대형 인터넷센터 등은 한 씨는 물론, 그의
애인까지도 충분히 만족시켰다. 다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 지갑을
확인하기 전 까지는. 이 날 하루 그가 쓴 돈은 20만원을 훌쩍 넘겼다.

#2. 영등포의 극장 A. 겉에서 보면 허름하지만 분명 개봉관이다.
'오영화'씨는 앞에 모자쓴 여자 덕분에 두 시간 내내 고개를 45도
기울인 채 관람했다. 그나마 요즘 유행한다는 멀티플렉스보다 두 배
큰 스크린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극장 안 유일한 매점에서는 점원이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는 "다음달 부터는 여기도 멀티플렉스
공사 들어가요"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전국 극장의 멀티플렉스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가 봅니다. 11개
스크린의 구의동 'CGV 강변 11', 17개 스크린의 삼성동 '메가박스'가
대표적이지만, 요즘은 웬만한 동네마다 생기느니 멀티플렉스 소식입니다.
심지어 지방 극장들도 "우리도 멀티플렉스로 바뀐다" 광고를 때려댑니다.
비록 후줄근했지만 한 때 100여개 가까웠던 서울 시내 추억의
재개봉관들은 이제 열손가락으로도 대략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줄었다더군요.

우선은 배급상의 이유가 크답니다. 한 개의 영화를 수십개의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게 된 작금의 영화시장에서 극장은 배급사에게 주도권을
넘긴지 이미 오래고, 극장들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때문에라도 멀티플렉스
전환을 계속하는 것이죠.

두번째 이유는 멀티플렉스가 소비사회, 대중이 원하는 욕망의 다양성을
기가 막히게 충족시켜준다는 데 있습니다. 테크노마트가 중심이었던
구의동을 한 번 보죠. 이제는 CGV를 중심으로 문화환경이 재편됐습니다.
또, 한 번 가면 전자상가에서 쇼핑하죠, DDR하죠, 식사하죠, 놀 게
쌓였습니다. 새로 생긴 메가박스는 한 술 더 뜹니다. 거의 소규모
테마파크에요. 대형서점, 음반매장, 스타벅스, 키티와 토토로 상점.
소비욕망의 해방구죠. 멀티플렉스는 그 중심기지로서 젊은이들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맡고, 그 주변시설들은 그들의 지갑을 무장해제하죠.
메가박스는 개장 두 달이 안돼, 관람객 60만명을 넘었고, 그 옆 현대백화점은
메가박스 생기기 전보다 매출이 50%넘게 증가했답니다. 애인과 이곳에서
데이트 한 번 하면 최소 10만원은 깨진다더군요.

멀티플렉스는 단순한 영화마케팅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문화마케팅입니다.
단순히 영화라는 코드로만 읽을 수는 없죠. 이동하기는 귀찮지만 욕망의
기호는 다양한 대중을 정확히 꿰뚫어 버린. 소비사회의 그물망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스폰지죠. (어수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