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안토니아 버드라는 영국 출신 여성 영화 감독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가 총격과 피로 얼룩진 폭력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할 수도 있겠다. 젊은 '게이' 신부 이야기를 그린 영화
'프리스트'를 통해 교회 내 위선을 공격하며 우상 파괴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던 그가 고작 쿠엔틴 타란티노 식의 '비열한 거리'에
눈을 돌리다니, 라면서.

과거에 좌파 행동가였다 그 뜻이 꺾인 지금 범죄의 길을 걷고있는
레이(로버트 칼라일). 버드의 「페이스」(Face)는 레이가 동료들과
함께 은행을 털면서 시작한다. 계획은 제대로 성사된 듯 했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알고 보니 예상에 턱없이 못 미치는 돈을 훔쳐온 것.
설상가상으로 누군가 돈을 더 챙기려 동료를 죽이는 배반 행위까지
생긴다.

범죄자들 내부의 암투와 분열을 그렸다는 점에서 본다면, 「페이스」는
확실히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연상케 하는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전자는 퍼붓는 총탄과 쏟아지는 피를 보면서 낄낄대는 후자의
'유희 정신'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페이스」에서도 총격전이 자주
등장하지만 여기선 그런 오락적 수단으로서의 '액션'이 아니라 단지
범죄자들의 위험한 삶을 보여주기 위한 리얼리즘적 장치일 뿐이다.
「페이스」는 어쩌면 범죄 영화라는 범주 자체를 혐오하는 범죄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레이도 이렇게 말한다. "난
범죄물이 싫어. 범죄자를 악마로 만들어 버리잖아."

그렇다고 이 영화가 홍콩 액션 영화를 추종해 범죄자를 무턱대고
영웅시하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장르 관습을 거부하면서 「페이스」는
'인간'으로서 범죄자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페이스」가 포착한 세계는 어떨 땐 얼굴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고 우중충 세계다. 그것이야말로 범죄자들이 본 세계의 모습일 텐데,
영화는 그래서 리얼한 그 세계 안에 범죄자들의 내밀한 속사정을 새겨
놓는다. 그들에게도 예언이, 가정이, 취미가, 다시 말해 보통 사람들이
가진 평범한 그런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좌파 행동가에서
범죄자로 전략한 레이의 경우에서 보듯, 한때나마 이상도 있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범죄 영화가 범죄를 만들어내는 기본 동력으로서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좌절된 이상주의와
비인간적인 사회 시스템과 범죄를 엮는 고리가 튼실하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 홍성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