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미국인 노먼 미네타씨(68)는 29일 부인 대닐리아와 함께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나란히 섰다. 클린턴 대통령은
"미네타씨를 33대 상무장관으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역사상 첫
아시아계 각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미네타씨는 “나의 부모님은 90여년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다”며 “이처럼 역사적인 문턱을 넘게 돼 영광스러우며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 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뒤, 열살바기 미네타는 부모와 함께

와이오밍에 설치된 일본인 구치소에 억류됐다. 12만명의 일본계 미국인들과

함께 4년간 감금생활을 겪은 후 그는 ‘다시는 이런 불의를 당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버클리대 학사를 딴 그는 군 정보장교로

한국과 일본에서 3년간 근무한뒤, 고향인 새너제이 시에서 ‘미네타

보험회사’를 운영하다 67년 시의원이 됐다. 그뒤 정계에서 승승장구했다.

71년 첫 아시아계 시장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은 것도 잠시, 74년엔
하원의원으로 워싱턴의 중앙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95년 은퇴할 때까지
21년간 내리 11선을 기록한 그는, 93년 의회 사상 첫 아시아계 상임위원장
(교통위원회)의 주인공이 됐다. 클린턴 대통령이 이날 "그가 갖고 있는
일련의 '최초' 기록을 더 늘리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 스스로 꼽는 가장 큰 업적은 88년 미일 배상법 제정을 주도한 것이다.
2차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의 강제 격리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와
함께 생존자에 대해 2만달러씩의 배상을 이끌어냈다. 의정활동 당시 그는
항공,고속도로 등 교통 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91년엔 하이테크 운송
시스템을 도입한 운송법을 입안했고, 6억6000만달러의 예산을 고속도로
정보 시스템 연구에 투자토록 했다. 지역구에 실리콘 밸리가 있는 탓에
첨단산업에도 밝은 식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가 미국 경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특히 하이테크 경제의 필요성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은퇴한뒤 미국 최대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의 수석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자신을 치켜 세워준 클린턴 대통령에게 "일본계 미국인 뿐
아니라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감사를 받을 것"이라고 답례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그의 인선 이유를 오는 11월 대선의 관건인 캘리포니아
주에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몰표를 노린 포석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고어 부통령의 선거운동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윌리엄 데일리장관의
후임으로 일하게 될 그는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점에 대해 "6개월은
새로운 경제에서는 무척 긴 기간"이라고 말했다. 그의 상원 인준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렌트 로트 공화당 상원 리더는 "훌륭한 선택"이라며
"그는 우리 모두가 아는 유능한 의원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