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어떤 말을 할까
호르스트 에버하르트 리허터
한경희 옮김·생각의 나무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은 여덟 명의 철인들이 오늘,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아인슈타인과 플라톤, 부처와
공자, 데카르트와 마르크스, 그리고 프로이트와 아우구스티누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름만으로도 광휘를 발하는 여덟 명의 철학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은 또 왜 지금 한 자리에 모여야 했을까?
우선 그들은 모두 지금은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여전히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육신의 부재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신의 현존을 의미한다. 없는 사람들의
그 검은 부재에서 여전히 대화의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현존의
환한 길을 통해서이다. 그 길은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며,
동양과 서양을 넘나든다. 그래서 인성의 계발을 역설한 보수적인 교육가
공자, 내향적인 영혼의 인도자 부처, 냉철한 국가론자 플라톤, 원조의
어두운 그림자를 펼쳐 보이는 급진적인 종말론자 아우구스티누스, 이성을
통한 인간과 사회의 발전을 예언하는 데카르트, 유토피아를 지향한 확고한
혁명 이론가 마르크스, 비관적 견인주의의 사회심리학적 인간이해를 주향한
프로이트, 현대과학의 대표자 아인슈타인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동과 서, 고와 금을 막론하고 그들의 육신은 사라졌으나, 사유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이 역사의 주인공들, 그들은
자신들의 사유의 결과물인 지금 이 세계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
이들의 천상대담이 의미를 갖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사유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를 가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오늘날 노벨상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의 노벨은 자신의 발명품으로 인해 빚어진 인류와 세계의
폭력에 대해 살아 생전에 이미 괴로워했다. 노벨상은 바로 한 인간이 자신의
의도하지 않았던 과오에 대해서조차 얼마나 정직하고 용기있게 인정하며
아파하는가를 보여주는 분명한 예이다. 이 대담의 주인공들도 자신들에게서
퍼져나간 사유의 홀씨들이 후대에 이르러 예측하지 못했던 악의 꽃으로
피어남을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다. 그들의 무엇이 이토록 세계와 인류를
탈이 나게 한 것일까? 소외와 불평등, 지배와 억압, 파괴와 약탈 등등.
그렇게 무수한 사람들의 순정과 노고에도 불구하고 해악의 포자는 손
쓸수 없이 퍼져나가 인류와 자연은 순수와 생성의 광휘를 잃어버렸다.
이 가상 대담집은 여덟 명의 위대한 인류의 스승들의 대화를 통해 현재
우리들의 얼굴과 표정에 스며들어 있는 일탈의 기원을 확인시키는 탁월한
장점을 갖고 있다. 서로의 입장 비교를 통해 그 어는 곳에서보다 각자의
논점의 핵심과 오류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성의 제국 창시자 데카르트와
그 이성의 보이지 않는 심연인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트의 어쩔 수 없는
차이, 기독교적 원조의식을 역설한 아우구스티누스와 모든 인간의 해탈
가능성을 일깨워준 부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해보라. 물론 그들 사이의
수많은 대화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가 행복의 시학을 만들 가능성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그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아직도 우리들이
스스로를 반성할 힘을 갖고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생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미세한 희망의 꽃이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 지금 우리들이 서
있는 길을 묻는다면, 나는 우선 이 책을 그에게 내놓겠다.
(박철화·문학평론가·소설가)